본문 바로가기
어원자료

결혼하다와 혼인하다의 어원자료

by 안녹산2023 2023. 10. 23.
반응형

1981년 세기의 결혼 찰스 황태자와 다아애나비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의 ‘결혼(結姆)'과 ‘혼인(婚因)' 항목은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음(결혼)',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는 일(혼인)'로 풀이되어 있다. 이 뜻풀이만으로 본다면 ‘결혼과 ‘혼인'은 특별한 의미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결혼'이나 ‘혼인'을 거의 같은 뜻으로 알고 사용하고 있다. ‘결혼식'과 ‘혼인식', ‘결혼식장'과 ‘혼인식장', ‘결혼잔치'와 ‘혼인잔치'를 달리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이 단어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쓰임이 다름을 금세 알 수 있다. ‘결혼관, 결혼 기념일, 결혼 반지, 결혼 사진, 결혼 상담소, 결혼 정책, 결혼 행진곡' 등은 낯익은 단어이지만 ‘혼인관, 혼인 기념일, 혼인 반지, 혼인 사진, 혼인 상담소, 혼인 정책, 혼인 행진곡' 등은 아무래도 낯선 단어들이다. 이것은 예전에는 ‘결혼'과 ‘혼인'의 뜻이 달랐던 데에 기인한다.

 

‘혼인하다'는 한 쌍의 남녀가 시집가고 장가가서 한 부부가 되는 것을 뜻하는 말이었다. ‘혼인'은 ‘혼(婚)'과 ‘인(姆)'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혼'은 ‘사위 쪽 집에서 며느리 쪽 집'을, 그리고 ‘인'은 ‘며느리 쪽 집에서 사위 쪽
집'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남자가 장가들고 여자가 서방을 맞는 일을 ‘혼인한다'고 하였다. 「석보상절」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사회 녀긔셔 며느리 녁 지블 婚이라 니라고 며느리 녀긔셔 사회 녁 지블 姻이라 니라나니 댱가들며 셔방 마조말 다 婚姻하다 하나니라<1447석보상절, 6, 16b>

 

혼인하기 위해서는 신랑이 장인 될 집에 들어가서 혼인식을 하고, 사흘 후에 신부를 데리고 자기 집(여자 편에서 보면 ‘시집')으로 가는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장가들고(장가가고) 시집간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서방(書房)은 ‘남편을 낮추어 부르는 용어인데, 여자 편에서 보면 남편을 맞이하는 셈이 되어 ‘서방 맞는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혼인'은 15세기 문헌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쓰이는 단어이다.

 

이에 비해 ‘결혼하다'는 오늘날의 뜻과는 달리 ‘혼약을 맺는 일'을 일컫는 단어였다. 혼인은 혼인 당사자와 관계된 단어이지만, ‘결혼'은 혼인 당사자만이 아니라 이에 관련된 사람(부모 등) 관계된 단어였다. 그래서 남녀 간에만 결혼하는 것이 아니고, 남자와 남자도 결혼할 수 있었다. 그 몇 예를 보자.

 

현령 죵니권이 이웃 현령 허군으로 더브러 결혼하니 죵니의 딸이 쟝찻 츌가<1758종덕신편언해, 하, 15b> 

(뉴언이) 그 또흔 김치묵으로 더브러 결혼한 후로 혼야의 샹종하야 구샹과 상묵으로 더브러 술먹고 맹셰하야 반다시 사람의 가국의 홰 된 후의 말녀하난 연괴니<1777명의록언해, 상, 39a> 

뉴시 왈 뎡개 명애 삼사셰의 션슉슉과 결혼하여 이졔 셩혼하매 경이히 작희할 조각이 업셔 우민하나이다<17xx명듀보월빙, 1, 301> 

리막다릐나난 한문 녀자ㅣ라 (중략) 년긔 쟝셩하매 부친이 외교인과 결혼코져 하거날 본대 슈졍할 원의 잇난지라 샹해 피할 계교랄 생각하더니 <1905기해일기, 31a>

 

「종덕신편언해」의 예문은 ‘현령과 현령'이, 그리고 「명듀보월빙」의 예문은 주인공이 3, 4세 때에 결혼하여 지금(이제) 성혼하는 것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기해일기」의 예문은 ‘리막다릐나'의 부친이 ‘외교인(종교가 다른 사람)'과 혼인하는 것이 아니라, 부친이 그의 딸인 리막다릐나를 외교인과 혼인시키려고 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표현이 ‘결혼 시키고져'가 아닌 ‘결혼코져'로 되어 있어서, ‘결혼하다의 뜻이 ‘혼인히다'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혼인 당사자는 혼인을 하지만, 그집안끼리는 결혼을 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결혼하다'의 의미가 ‘혼약을 맺는 것'으로부터 당사자끼리 ‘직접 혼인한다'는 것으로 변화한 것은 결혼하는 사람(예컨대 예비 신랑 신부의 부모)을 혼인 당사자(즉 예비 신랑 신부)로 바꾸어 표현하면서 발생한 결과로 보인다.

 

황제 보시고 가라사대 경의 딸이 잇다 하니 낭목의 아들과 결혼하라 하시거늘<1926권익중실기, 176>

 

이 예문은 이전에는 ‘경이 낭목과 결혼하라'고 표현되었을 것인데, 앞에 ‘경의 딸'이 있어서 ‘낭목의 아들'과 ‘결혼하다'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혼인 당사자끼리 ‘결혼하게' 되어서, 결국은 ‘혼인하다'와 ‘결혼하다'가 동일한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이다. 이미 18세기부터 ‘결혼하다'는 ‘혼인하다'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아홉재 죄난 위랑이 오시끠 결혼할 줄 엇디 알니잇가 이제난 쳡이 발셔 한 낭자로 죽기를 뎡하여시니<18Xx빙빙전, 137>

텬쥬 ㅣ 결혼함을 뎡하야 셰우심은 부부 ㅣ 서로 돌보고 서로 사람의 사랑하고 서로 공경하고<1864셩교절요, 81b>

맛딸은 일작이 젼 덕국 황뎨와 결혼하야 지금 황뎨 윌님을 나핫고<1901신학월보, 권1, 157>

 

‘결혼하다'가 일본어로부터 들어온 힌차 차용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지만, 이 단어가 이미 18세기부터 사용되는 현상으로 보아 그 주장은 신빙성을 얻기 힘들다.

 

혼인


이 ‘혼인'과 거의 같은 뜻으로 ‘가취(嫁娶)'란 단어가 쓰였었다. ‘혼인'이란 단어와 별 차이가 없었다. 「내훈언해」 에 나오는 설명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嫁娶(嫁난 겨지비 남진 어를시오 娶난 남진이 겨집 어를시리)<1465내훈언해, 1, 63b>

 

이 단어는 오늘날 사전에는 실려 있지만,일반인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혼인'이나 ‘자취'에 대응되는 고유어는 없었을까? 아마도 ‘어르다'가 한자어에 대응되는 단어로 보인다. 이 단어는 직접적으
로 남녀간의 ‘성교 행위'를 나타냈던 단어로 보인다. 그러면서 동사로서 혼인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었다.

 

그딋 형톄 다 죄 니버 죽고 어마님도 하마 죽고 겨집도 다란 남진 어르니 인생이 아참 이슬 갇타니 엇뎨 이리도록 슈고하난다 하야날<15XX삼강행실도, 6b> 

셩도애 어비 아다리 마초아 샤랄 만나 도라와 감동하야 죽다록 다른 겨집 아니 어르니라<15xx삼강행실도, 열, 1a>

니시 닐오되 내 엇띠 두 남진 어르료 하고<15XX삼강행실도, 열, 1a>

 

‘혼인' 이전에 양가에서 ‘결혼'을 하게 되고, 이것을 ‘정혼(定婚)'하였다고 표현하였으며, 이것이 이루어져 혼인을 하게 되면 ‘성혼(成婚)'되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결혼 이전에 양가에서 오늘날처럼 맞선을 보는 행위가 있
었을까? 그 행위를 나타내는 단어들 중, ‘맞선'은 최근에야 생긴 단어다. 이때의 ‘맞'이야 ‘마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그 뜻을 알겠지만 ‘선 보다'의 ‘선'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선 보다'는 19세기 말에 보이기 시작한다. 아마도 맞선은 아닌 것 같다. ‘간선(看選)'으로 표기한 것은 ‘선보다'를 직역한 것으로 보인다. 대신 ‘간서(擇婿)', ‘간부(揀婦, 사위와 며느리를 간택한다)'는 뜻으로 보아서 ‘먼저(또는 미리) 보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선 보다'의 ‘선'은 ‘선(先)'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그 근거를 제시할 만한 자료는 없다. ‘선 보다'의 ‘선'의 어원은 아직은 밝히기 어렵다.

 

선 보다 看選, 擇婿, 揀婦<1895국한회어,176>

 

선을 보고 결혼을 하는 것을 ‘정혼(定婚)'하였다고 하지만 또한 그것을 ‘약혼(約婚)'하였다고 하였는데, 이 단어도 일찍부터 사용되었다. 18세기부터 그 용례가 발견되는데, ‘약혼'을 ‘혼인을 언약'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뎡혼하다 定婚<1880한불자전, 475> 

아모리 定婚한 男子일지라도 밤중에 남몰래 차저 오는 것이 녀자의 일은 안이지 하며 <1927청춘, 38>

요웅이 처음에 쟝쉬 되매 그 녀즈로써 한 채쥬의 아달과 뎡혼 하얏더니<1758종덕신편언해, 하, 18a> 

나는 생각에 아모리 정혼은 하엿더래도 셩례난 한 젹이 업슨즉 댁 아다님께셔난 이왕 정혼하엿든 경원 랑자와
작배를 하게 된 터에 다시 기다릴 것 업셔 다른 혼쳐를 구하랴 하얏더니 <1914금강문, 444> 

혼인을 언약(홍뇽한의 아달노 후겸의 딸의게 약혼하다)하기의 니라러<1777명의록언해, 상, 9b>

김공 셩응이 션인긔 이 연고랄 하고 퇴혼하쟈 한즉 션인이 하시대 우리 두 집이 임의 약혼하여시니 내 시방 와셔 처녀가 병드다 하고 언약을 져바리면 사부의 도리 아니오<18xx한중록, 340>

 

사람의 일생 중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였던 ‘혼인'에 관한 단어들은 원래 이렇게 세밀한 의미차이를 가지고 여러 형태로 발전해 왔던 것인데, 오늘날에 와서는이 단어들의 의미가 모호하게 된 것은 혼인풍속의 변화를 반영한 것인지 모르겠다. 최근에는 ‘혼인 예식장'이란 말도 사라지고 이른바 ‘웨딩 홀(wed血lg hall)'로 바뀌어서 촌로들이 예식장을 앞에 두고도 찾지 못하는 웃지 못할 광경도 가끔 볼수 있어 씁쓰레한 마음이 앞을 선다.

 

 

반응형

'어원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말의 아름다움  (1) 2023.10.26
아름답다의 어원자료  (1) 2023.10.26
고유어는 연어의 고향 냇물  (1) 2023.10.26
곤두박질의 어원자료  (1) 2023.10.23
개나리 어원자료  (1) 2023.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