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민족이 단일 국토에서, 단일 역사를 배경으로 단일 언어를 쓰며, 단일 문화와 관습을 지닌 나라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다. 이처럼 다섯개 단일 요소가 한 세트를 이룬, 이 희귀하고 값진 천혜(天惠)를 그러나 우리는 그리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깊이 깨닫지 못함도 이런 현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오늘날 영어가 전 세계 공용어 노릇을 하고 있다. 이에 부응하여 우리나라의 아이들도 젖떼기가 무섭게 영어 교육에 매달린다. 우리가 모국어인 한국어를 잘 해 볼 생각은 하지 않고 온통 영어에만 매달려 있는 현 풍조를 보고 민족어의 장래를 생각하는 이들의 염려를 자아내기도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을 새삼 들출 필요는 없다. 언어의 본질은 같은 것, 우리말 하나라도 잘 구사해야지 영어도 비로소 잘 할 수 있는 법이다. 영어 조기 교육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영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언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그것 역시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말 한국어도 그만 못지 않게 아름답고도 우수하다. 이 책 내내 그런 내용이 언급되겠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여 우리말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가장 한국적'이라는 데 있다.
아름의 본 뜻이 '작은 것'이라 추정한다. 그런데 '아름'이 혹 남성이 여성을 '안는다[抱]'는 말에서 파생된 말이 아닐까 의심해본다. 즉 '안-[抱擁]'의 명사형 '안음'이 '아늠>아름'으로의 변형 말이다. 만약 이 추정이 맞다면 '아름'은 정말 멋진 말이 아닐 수 없다. 희랍의 희곡 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발견해 낸 '포옹의 법칙'이 한국어의 이 말에 그대로 적용되겠기에 하는 말이다. 평균 여자의 허리둘레와 평균 남자의 팔 길이는 똑같다는 설이 흔히 말하는 포옹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조물주의 조화도 절묘하지만 그 조화를 미리 알아차리고 이를 잘 살린 우리말도 그만 못지않다고 생각된다.
한국어의 아름다움은 언어 자체가 갖는 특성으로서의 아름다움과 개별적 낱말로서의 아름다움으로 나누어 얘기할 수 있다. 우선 우리말은 음운 면에서 풍부한 말소리[音素]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바람 소리 물소리, 닭이나 학의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까지도 가장 가깝게 낼 수 있으며, 또 이를 거의 완벽하게 표기할 수 있는 문자까지 갖추고 있다. 가까운 나라 일본이나 중국어의 그것과를 비교해 보더라도 이런 주장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어휘 면에서는 단어형성법이 발달되어 있고, 또 육감을 통해 받아들인 자극을 표현하는 감각어와 의성 의태의 시늉말(상징어)이 우수하다는 점이다. 기러기, 개구리, 깍두기, 떠버리, 뻐꾸기, 얼룩이, 누더기 같은 말이 그러한 주장에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주지의 사실이지만 우리말의 감각적인 표현은 단연코 타 언어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나다. 예컨대 무엇이 돌아가는 형상ㅇ르 묘사하는 의태어 '빙빙'과 '삥삥' 그리고 '핑핑'의 정도나 느낌은 사뭇 다르다. 비만의 정도를 나타내는 '똥똥, 뚱뚱, 통통'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상징어는 음운론적 유연성(有緣性)을 지녀 구체성을 띄는가 하면, 모음의 음양과 자음의 예사소리, 된소리, 거센소리의 대조로 어감을 달리함으로써 표현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그 말의 아름다움까지 배가시킨다.
우리말 어휘는 한자어가 7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한자가 비록 중국에서 전래된 외래어라고 하나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말 속에서 숙성 동화되었기 때문에 우리 고유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한자는 또한 뜻글자여서 처음 대하는 낱말이라도 그 의미를 대충은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을 가졌다. 그리고 우리말 어휘는 기존의 어휘를 조합하여 새로운 사물이나 현상을 지칭한느 어휘를 만들어내기에 매우 효율적이다.
단어 구조에 있어 한 기본적 형태소나 낱말이 본래의 의미를 간직한 채 다른 요소와 결합하여 새로운 복합어나 파생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자가 가진 생산성이 큰 역할을 담당한다. 예컨대 배운다는 의미를 가진 학(學)이란 한 글자가 만들어낼 수 있는 어휘를 상상해보면 한자가 지닌 생산력을 짐작할 수가 있다.
통사 면에서도 문장이나 대화에서 주요 성분이 곧잘 생략되는 특징이 있다. 우리말이 상황 의존적이요, 상대 중심의 언어로서 주요 성분이 생략되더라도 의사 전달에는 별 지장을 주지 않는다. 형식을 중시하는 서구어의 논리적 표현보다는 대화 현장에서의 상황과 상대를 중시하는 우리말 표현이 보다 정서적 분위기 조성에 적합하다. 또한 성분의 생략은 표현의 간결성과 함께 여백의 미라고 할까, 행간을 읽을 수 있는 곧 여운이 주는 아름다움까지 가지고 있다.
우리말의 근원이 인간적인 감성에서 비롯되다 보니 언어 자체의 아름다움과 함께 부수적으로 재미있는 표현도 덩달아 생겨나게 된다. 일종의 말놀이라고 할까, 재미있는 우리말 놀이의 한 예를 들어본다. 농촌에서 들을 수 있는 노래, 곧 무밭에서 두 편으로 갈라 무를 뽑으며 부르는, 흥겨운 무타령의 한 구절이다.
부끄럽다 홍당무, 여덟아홉 열무, 입 맞췄다 쪽무
이쪽저쪽 양다리 무, 방귀 뀌어 뽕밭 무, 처녀 팔뚝 미끈 무
물어봤자 왜 무, 오자마자 가래 무, 정 들다 뻐드렁 무
첫날 신방 단 무, 단군 기자 조선 무, 크나 마나 땅따리 무
이 노래의 재미는 한편에서 '처녀는 ... '이라고 흥을 돋우면 상대편에서 그것을 받아 '총각은 ....' 하면서 순간 무를 쑥 뽑아내는 데 있다. 가사에 나오는 무 이름은 물론 정식 명칭은 아니다. 일종의 언어 유희로 말장난에 불과하지만 이 같은 '이름짓기' 놀이는 고유어의 어원 탐구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무 타령과 유사한 형식의 타령 하나만 더 들어보기로 한다.
"청명 한식에 나무 심자. 무슨 나무 심을래?"
로 시작되는 나무타령의 한 구절이다.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갑절 스무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 나무
거짓 없어 참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네 편 내 편 양편나무
입 맞췄다 쪽나무
양반 골에 상 나무
너하고 나하고 살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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