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물고기 연어가 생의 종말에 이르러 어떻게 자신이 태어난 모천(母川)으로 찾아오는지에 대해서는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까지도 잘 모른다고 한다. 연어 스스로 모천의 냄새를 맡는 능력이 있다고도 하고, 항해기록이 아가미에 자동 입력된다는 설도 있다. 심지어 연어가 지구의 자기(磁氣)를 감지하여 그 방향을 알아낸다는 주장까지도 있다. 어떻든 모천을 떠난 연어가 수십만 킬로미터의 망망대해를 항해하였고, 그것도 아득한 옛날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고향 냇물을 알고 틀림없이 찾아온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연어가 바닷물 속에서 호흡하듯 인간 상호간 의사소통도 '언어의 바다'에서 행해진다. 넓디넓은 바다 한가운데서 목숨을 걸고 찾아오는 연어의 모천은 바로 언어 가운데도 고유어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오랜 세월 조상들에 의해 생성 변천해온 고유어는 연어가 알에서 깨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바로 그 고향 냇물이라 해도 좋다. 사람마다 유전인자가 다르듯 여러 민족의 언어에도 그 민족만이 가진 독특한 유전자가 있다.
오늘날 유전자 감식을 통하여 생부(生父)를 찾거나 확인해주듯이 고유어의 어원 탐구는 바로 모천의 성분을 알아내고, 그 민족 유전자의 고유 특성을 밝혀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연유로 순수한 우리말, 곧 고유어(固有語)가 이 책에서 다루는 어원 탐구의 주 대상이 된다. 한 언어의 어휘체계는 크게 보아 고유어와 외래어로 대별된다. 외래어에는 외국어나 차용어, 혹은 귀화한 어휘까지 넓은 범위의 외래어에 포함된다. 한자어라면 한자로 이루어진 어휘를 말하는데, 발음은 모두 우리 식으로 하기 때문에 한국신 한자어를 'sino-Korean'이라 부른다. 고유어화 한 일부 한자어는 이른 시기에 이 땅에 시집와서 오랜 세월 풍화 작용으로 이미 우리 옷으로 갈아입은 어휘들이다. 귀화어(歸化語)라고도 칭할 수도 있는, 이들 어휘는 어쩔 수 없이 넓은 범위의 고유어 속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다. 문화는 그 어떤 외래적인 요소라도 포용하여 고유문화 속에 환골탈태 시키는 적극적인 문화여야 하겠기 때문이다.
우리말 어휘 중에 귀화어에 포함시킬 수 있는 예로 정(情)과 한(恨), 그리고 기(氣)와 신(神) 같은 한자어를 들 수 있겠다. 모두 단음절인 이들 한자어는 어느 때부터인지 모르겠으나 자연스럽게 고유어처럼 여겨져 지금은 완전히 우리말이 되었다. 이 중 '정'과 '한'은 사람과 사람 사이, 곧 인간 관계에서 비롯된 말이라면, 후자의 '기/끼'와 '신'은 한 개인에 국한된 어휘라 할 수 있다. 이들 용어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언급되겠지만 어떻든 이들은 이 땅에 들어와 가장 성공한 귀화 어, 또는 가장 한국적인 한자어라 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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