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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자료

삭이고 푸는 문화

by 안녹산2023 2023.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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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한풀이 춤

 

 

사람들 마음속에 화가 한가득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 사고에 잠시도 편한 날이 없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없다. 그때그때 풀지 못한 화가 쌓여 사소한 일에도 느닷없이 성을 내거나 억지로 참다 마음의 병을 얻기도 한다.

“화를 삭히기 위해 혼술을 하다 건강이 나빠졌다”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속으로 삭히다 화병이 났다”

 

는 등의 사연을 종종 접한다. 한데 여기서 ‘삭히다’는 바르지 못한 표현이다.

 

“화를 삭이기 위해”

“속으로 삭이다”

 

로 바꿔야 한다.

이런 혼란이 생기는 것은 ‘삭히다’와 ‘삭이다’ 모두 ‘삭다’의 사동사이기 때문이다. ‘삭히다’는 김치나 젓갈 따위의 음식물을 발효시켜 맛이 들게 하다란 뜻의 사동사다. ‘밥을 삭혀 끓인 감주’, ‘김치를 삭히다’, ‘가자미를 삭혀서 만든 가자미식해’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다. 젓갈 등을 오래되도록 푹 삭힌다고 할 때도 ‘곰삭히다’를 사용한다. ‘곰삭이다’란 말은 없다.

‘삭이다’는 어떤 감정이나 생리작용을 가라앉혀 풀리도록 하다란 뜻의 사동사다.

 

“억지로 화를 삭이려 애쓰지 말아라”

“가래를 삭이는 데 좋은 음식”

 

등과 같이 쓰인다. 긴장이나 화를 풀어 마음을 가라앉히다, 기침·가래 등을 잠잠하게 하다라고 할 경우엔 모두 ‘삭이다’로 표현한다. 음식물을 소화시킨다고 할 때도 ‘삭이다’를 쓴다.

 

“돌도 삭일 나이에 그렇게 소화를 못 시켜서 어떻게 하냐”

 

처럼 사용한다. 한국문화를 '푸는 문화'로 풀어내는 이도 있다. 여기에 '푸는 문화'에다 삭임 또는 삭힘의 문화를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푸는 것이나 삭이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동일하지만 그 과정에는 얼마간의 차이가 있다. 삭이는 것이 수동적이요, 소극적이라면 푸는 것은 보다 능동적이요 적극적이다. 전자가 체념이라면 후자는 해소라 할 수 있다. 삭임이나 삭힘은 삭다[消]의 사역형으로 '-이/히' 어느 쪽을 서도 무방하다. 삭임이든 삭힘이든 이 말은 음식물의 발효나 소화에서 비롯된 말이다. 삭임/삭힘은 나아가 사람이 흥분되었거나 긴장된 심리 상태가 풀려 가라앉힌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추상적 의미로서의 삭임/삭힘은 일종의 심리적 정화(淨化) 작용이다. 희망이나 욕망을 버리는 결과로 드러난 체념이요, 불만과 분노를 삭이는 과정에서 얻어진 심적인 안정감이다. 음식물이라면 한국은 단연 '발표 문화권'의 종주국이다. 간장, 된장, 고추장의 장(醬) 종류와 김치류, 젓갈류 등이 한국 음식의 대종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삭힌 발효 식품이 한국 음식의 기조요, 한국적 맛의 통일된 요소가 바로 이 발효에서 형성되는 아미노산에 있는 것이다. 

 

"어차피, 차라리"가 뜻하는 체념

 

누구에게나 무언가 하고 싶은 욕망과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러나 세상사는 사람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일이 여의치 않을 때 한국인들은 그 실망과 분노를 가슴속에서 삭이거나, 아니면 갖가지 방법으로 그 응어리를 풀어버리고자 한다. 가슴 속에 쌓인 원이나 한을 푸는 데도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응어리지게 한 원인 제공자에게 '앙갚음'함으로써 푸는 적극적인 외향풀이요, 다른 하나는 스스로 내부에서 푸는 내향풀이 곧 삭임의 방법이 있다.

 

한국인은 대개 후자의 내향풀이 방법을 주로 택한다. 이럴 경우 혼자서 가슴 속 응어리를 삭이는 과정에서 '어차피'라든지, '차라리'란 상투어가 함께 동원된다. 이 두 부사는 '별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체념에서 비롯되어 자연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한국인의 숙명의식을 반영한다. 

 

어차피는 한자어 '어차어피(於此於彼)'의 준말이다. 비록 한자말이긴 하나 우리 민족의 운명관과 부합되어 지금은 마치 고유어처럼 인식되는 말이다. 

 

"어차피 짧은 인생인데"

"어차피 만나지 못할 사이라면"

"어차피 오다가다 만난 사람인데"

 

하는 식으로 숙명을 내새우며 이내 체념하고 마는 우리네 심성을 잘 대변한다. 그러나 어차피가 체념만으로 끝난다면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다. 체념의 구렁텅이 속에서도 우리 민족은 다음 단계의 대안을 모색한다. 곧 차라리라는 부사가 그 돌파구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이왕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이렇게 하겠다.'는 새로운 각오이자 다짐의 표현이다. 이는 또한 어떤 일이 닥쳐도 당황하거나 좌절하지 않겠다는 결의요, 이런 무상감의 양성은 미구에 닥칠 불행에 대한 심리적 면역법의 일종이기도 하다. 어쨌든 한국인은 주어진 숙명을 슬기롭게 삭임으로써 보다 귀중한 자유를 얻게 된다.

 

서구계 외래어의 '-하다'가 우리말에서 곧잘 '-되다'로 표현되는 현상도 이런 우리식 운명관의 한 발로이다. '한다'가 능동적인 표현이라면 '된다'는 피동적인 수동적인 표현이다. 이를테면 나는 무엇을 이렇게 '생각한다'면 될 것을 굳이 '생각된다'로 한다든지, 심지어 '생각되어 진다'라 하여 이중 삼중의 피동어 사용도 마다하지 않는다. 

 

"겨울이 되었다."

"밤이 되었다."

 

에서 보듯 자연이나 운명이 되어감에 의존하는 우리식 표현법인 것이다.

 

심심풀이에서 푸닥거리까지

 

"그까짓 것 서로 풀어버려!"

 

싸움을 말릴 때 곧잘 쓰는 표현이다. '풀어버리라'는 건 가슴에 맺힌 좋지 않은 감정이나 분노의 찌꺼기를 물로 씻은 듯이 깨끗이 잊어버리라는 말이다. 이럴 경우라면 서양인들은 반드시 따지고 시비를 밝힘으로써 합리적인 해결로 매듭지으려 한다. 그러다보니 토론이 필요하고 재판이 필요하게 된다. 따지지 않고 그냥 덮어버리려는 한국식 해결 방식을 이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인은 예로부터 '푸는 일'을 최선으로 여겼다. 우리식 관점에서 볼 때 푸는 것이 곧 망각이요 용서며, 관용으로 치부된다. 일상에서 행하는 '풀이'에는 가벼운 심심풀이에서 무당들에 의해 행해지는 본격적인 푸닥거리까지 그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푼다면 무엇을 푸는가? 문제를 풀고, 몸을 풀고, 회포를 풀고, 쌓인 피로를 풀고, 긴장을 풀고, 억울함을 풀고, 분함을 풀고......, 그래서 하는 말이 기분풀이요, 화풀이요, 분풀이요 한풀이요 원풀이다. 악귀를 달래주는 살풀이가 그러하고, 무당이 죽은 영혼의 원한을 달래주는 '푸닥거리'가 바로 푸는 문화의 핵심이다. 뿐만 아니라 글을 짓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 등의 모든 예술 행위가 바로 시름풀이에서 나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것이다. 심지어 심심한 것까지도 '심심풀이'로 달래주어야만 하는 민족이 아니던가.

 

그러나 무엇보다 풀어주어야 할 주 대상은 오랜 세월 가슴 속에 쌓이고 맺힌 응어리다. 응어리는 본래 근육이 뭉친 덩어리를 지칭함인데 여기서 말하는 응어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심적인 근육이다. 이 정신적 응어리가 훗날 한자어를 만나 살(煞)이나 이 되기도 하고, 원(怨)이나 한(恨)이 되기도 하며, 지금처럼 현대 의학용어를 만나면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우리 전통사회의 윤리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받는 그 많은 스트레스를 가급적 수용하여 그저 한숨이나 내뿜으며 속으로 삭이기를 강요해 왔다. 이 스트레스가 축적되어 감당할 수 없는 한게에 이르면 이것이 '살'로 맺히고 '한'으로 응어리지며, '원'으로 사무치게 된다. 한자 한(恨)은 마음을 뜻하는 '心'에 가만히 멎어 있다는 良자와의 회의문자다. 나무뿌리가 땅 속에 가만히 멎어 있기에 근(根)이 되듯이 마음속에 상처를 가만히 간직하고 있는 상태가 한(恨)인 것이다.

 

무당에 의해서 행해지는 푸닥거리는 가슴속에 맺힌 한을 풀어주는 공적인 의식이다. 푸념 역시 풀다에서 파생된 무속 용어다. 본래 굿을 할 때 무당이 신의 뜻이라 하여 정성들이는 사람에게 하는 꾸지람을 지칭했으나 지금은 불평을 늘어놓는다는 뜻으로 전이되었다. 한국의 무속(巫俗)이 그토록 지속적인 탄압 속에서도 수천 년 간 그 맥을 이어온 저변에는 이처럼 이 민족의 맺힘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순기능을 담당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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