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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자료

기저귀 어휘자료

by 안녹산2023 2023.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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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기저귀

 

 

 

기저귀'란 ‘어린 아이의 똥오줌을 받아 내기 위하여 다리 사이에 채우는 천'을 말한다. 그러나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 나와 말하는 어느 젊은 연예인의 말을 듣고 ‘기저귀'의 뜻이 바뀌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연예인은 부모가 가출하여 고아 아닌 고아가 된 손자들을 혼자 키우시는 할머니 댁을 방문하고 나서 ‘기저귀는 보이지 않고 헝겊으로 만든 천들만 빨래 줄에 많이 널려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종이로 만든 1회용 기저귀만을 ‘기저귀'로 알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기저귀'의 어원을 알면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기저귀'는 언뜻 보아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단어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기저귀'는 ‘깆 + -어귀'로 분석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깆'은 올림말로 등재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주로 ‘옷깆'으로만 출현하기 때문에 그
러한 대우를 한 것 같다. ‘깆'은 ‘옷깆'으로만 출현하지만, 18세기부터는 ‘옷깃'으로 나타나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領은 옷기지라<1465원각경언해, 3, 상-1, 2:76a> 

馬融의 덧소리 든논 듯하며 仲宣의 옷기잘 지엿난 닷호라<1481 두시언해(초간본), 3, 14a>

小人의 옷깃슬 트러 잡고 百般 티고 욕호되<1765박통사신석언해, 3, 52b>

或 옷깃살 잡아다 이저시면 곳 喉下에 옷깃 痕跡 검은 빗치 잇나니 <1792증수무원록언해, 2, 21b>

 

‘옷깆' 또는 ‘옷깃'은 ‘옷'이 분리될 수 있기 때문에 ‘깆'이나 ‘깃'은 별도의 의미를 갖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현대국어에서 ‘깃'은 ‘옷깃'과 같은 뜻이어서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목에 둘러대어 앞에서 여밀 수 있도록 된 부분' 또는 ‘양복 윗옷에서 목둘레에 길게 덧붙여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깃'은 ‘아이 옷'을 말하는 것이었다. 「훈몽자회」에 ‘석(褯)'을 ‘깃 챠 俗呼補子'라 하고 있어서,  ‘석(褯)' 즉 ‘깃'은 원래 ‘어린아이의 옷'을 뜻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성통해」에도 ‘小兒被卽合繃子 깃'이란 기록에서, 어린아이가 입는 옷인 ‘붕자(繃子)'를 ‘깃'이라고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천 기저귀 vs 종이 기저귀

 

 

 

그래서 ‘기저귀'는 ‘어린 아이의 옷'이란 뜻을 가진 ‘깆'에 접미사 ‘-어귀'가 붙어서 된 말이다. 접미사 ‘-어귀'는 여러 단어에 나타난다. 옛날에는 ‘주먹'을 ‘주머귀'라고 했는데, 이것도 ‘줌+-어귀'로 된 것이고, 역시 ‘손아
귀'의 ‘-아귀'도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기저귀'는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기저귀'란 단어는 19세기에 처음 보인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기저귀'가 없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기저귀'란 단어가 있기 전에는 ‘기저귀'를 ‘삿깃'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여러 곳에 그 기록이 보인다.

 

尿布 샷깃 卽 기저귀 <18xx광채물보, 인도, 2b>
尿補子 삿깃 尿布<1715역어유해보, 22b>
尿補子 삿깃 <1778방언유석, 서부방언, 2a>

 

이때의 ‘삿깃(또는 ‘샷깃')'은 ‘사타구니'의 뜻을 가진 ‘샅'에 ‘깃'이 통합된 형태이다. 즉 ‘사타구니에 댄 깃'이란 뜻이다. 즉 오늘날의 ‘기저귀'와 동일한 뜻이다. 그래서 ‘샷깃 卽 기저귀'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러한 기능을 가진 ‘기저귀'의 실체가 생겼을까? 추측컨대 16세기에는 ‘기저귀'가 없었던 것 같다. 16세기에 간행된 「번역박통사」의 기록이 그러한 기능성을 보여 준다.

 

갓 아기 싯기기 맛고 머리 갓고 아기랄다가 달고지예 엿나니라 술위 사다가 미틔 지줅  쌀오 또 젼툐 쌀오 우희 두서 깃 쌀오 아기를 누이고 우희 제 옷 둡고 보로기로 동이고 오좀 바들 박을 그 굼긔 바라 노코 분지를다가 미틔 노코 아기 울어든 보고 달고지를 이아면 믄득 그치나니라<1517번역박통사, 상, 56b>
(갓 낳은 아기를 씻기고 머리를 깎과 아기를 달구지(흔들차, 搖車)에 넣고 수레를 사다가 밑에 지줅(욍골자리)을 깔고, 또 전초(氈條, 보료) 깔고, 위에 두어 깃(어린이 옷 같은 얇은 천) 깔고 아기를 누이고 아기 옷을 덮고 보로기(아기 옷을 동이는 끈)로 동이고 오줌을 받을 바가지를 그 구멍에 바로 놓고 분지(糞池, 똥 받을 그릇)를 밑에 놓고 아기 울거든 흔들차를 흔들면 문득 울음을 그치니라)

 

이 기록을 보면 오줌을 받을 바기지를 애기의 잠지 아래에 놓는다고 하였으니, ‘기저귀'는 없었던 것 같다. ‘삿깃'이 18세기에 보이는 것을 보면 늦어도 18세기부터 ‘기저귀'의 기능을 가진 천이 있었고, ‘기저귀'란 단어
는 19세기에 생겨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해서 과연 ‘기저귀'를 1회용 기저귀로만 인식하는 현대인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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