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이름에 스승 사(師) 자가 붙은 것은 사자(獅子)밖에 없을 것이다. 사(獅)는 짐승을 뜻하는 개사슴 록 변에 스승 사(師) 자를 붙여놓은 글자이다. 그리고 자(子)는 공자(孔子), 맹자(孟子)라고 할 때의 그 자(子)와 같은 것으로 역시 스승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봉황이니 하는 상상적 동물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후한 대접을 받고 있는 짐승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자를 스승처럼 받들고 있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할 사람도 없지 않을 것 같다. 스승은 오로지 덕과 지혜로 다스리는 것인데 사자의 그 지배력은 폭력적인 힘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비록 스승이 매를 드는 일은 있으나 그것은 사자의 발톱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자후(獅子吼)라는 말이 악마를 물리치는 부처님의 설법을 상징하고 있듯이 사자는 육체적인 힘만으로 존경의 대상이 된 것은 결코 아니다. 우선 생김새부터가 점잖다. 늑대처럼 흉포하지도, 여우처럼 교활해 보이지도 않는다. 무엇보다도 머리의 황금빛 갈기가 꼭 태양 같다 하여 광명과 어둠의 정복자로 찬양되기까지 한다.
무엇보다도 짐승 가운데 사람의 눈을 제일 많이 닮은 것이 사자라고 한다. 초식 동물들은 자기 발 밑의 풀만 보고 다닌다. 그러나 초원의 사자들은 항상 먼 지평을 둘러보면서 살아간다. 같은 맹수라도 호랑이는 밀림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 눈은 먼 데를 바라볼 수가 없다. 그 점이 호랑이와 사자의 다른 점이다. 백수의 왕이 되지 못한 호랑이의 약점이다. 사자의 눈은 무엇인가를 내다보고 있는 듯한 통찰력과 사물을 조망하고 있는 사색의 깊이를 지니고 있다.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인간만이 지닌 그 시선(視線) 같은 것 말이다.
그럼 스승이란 무엇인가? 그 답은 왜 하필 사자에게 스승 사 자를 붙여주었는가 하는 그 해석과도 통한다. 스승은 바로 멀리 있는 것을 바라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발 밑의 풀만이 아니라 먼 삶의 지평으로 우리의 시선을 이끌어주어야만 참 스승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당장 필요한 것만을 가르치는 실용 교육은 기술자는 몰라도 훌륭한 지도자를 만들어내진 못한다. 실용 교육에 힘쓴 독일은 과학과 경제력에서 유럽 최강의 나라가 되었지만, 1 2차 세계 대전에서는 모두 패했다. 히틀러 같은 광적인 지도자밖에는 만들어내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나 영국은 고전과 교양을 중심으로 한 인성 교육에 힘썼다. 그 때문에 국력은 뒤졌지만 두 전쟁에서 다 같이 독일을 이길 수 있었다. 스승의 날에는 사자의 눈을 생각하자.
나라와 교육의 밝은 장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원(교사)들이 존경받는 사회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는 말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는 "교원(교사)"의 호칭을 "선생"이라 하지 말고 "스승"이라 부르도록 해야 한다.
"先生"이라는 말의 본뜻은 「먼저 태어나다」로 「後生」과 맞서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너보다 선생 했으니(먼저 태어났으니)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다」처럼 쓰이는 말이다. 그래서 "먼저 난 사람"이란 뜻으로 아버지와 언니, 곧 부형을 선생이라고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나서 나보다 일찍 도리를 알고 있는 선배를 선생이라고도 하였으며, 벼슬을 그만두고 집에 돌아와 있는 고향 사람도 「선생」이라고 하였다.
이 말이 한자와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써 오던 "스승"이라는 말이 사대주의자들에 의해 밀려나고 "스승"이라는 순수한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말이 "선생"이라는 말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일제에 의해 국권을 빼앗긴 뒤로는 일제의 한글의 말살정책에 의해 더욱 탄압을 받아 우리의 말과 우리 글은 숨어서 사용하게 되었다. 여기에 일제에는 본래부터 "스승"이라는 말은 없고 "선생(센세이)"이라는 말밖에 없었으니, 모든 교과서와 책에 "선생'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선생"이라는 "스승"을 나타내는 말로 최상의 존칭어로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요즈음에 와서는 다시 중국에서 처음 말이 만들어질 때와 같이 "먼저 태어난 사람"이면 모두 "선생"으로, 아니 이제는 한 술 더 떠서 나보다 늦게 태어난 사람에게도 "선생"이라 부르고 있으니, "교원(교사)"의 부름 말이 그 뜻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말이 되어 버렸다.
우리 사회에서 아무나 "선생님"이요 "사모님"이다. 이제 "선생"이라는 말은 "교원(교사)"를 부르는 말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 모두를 부르는 말로, 그저 상대를 좀 높여 부르는 말이 되어버렸다. 그러면 "교원(교사)"를 나타내는 말에는 무엇이 있는가 살펴보면 우리말에는 참으로 부드럽고 그 뜻이 깊고 오묘한 말들이 많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교원(교사)"의 호칭인 "스승"이라는 말이다.
"스승"이라는 말은 순수한 우리의 고유한 말로 한자가 들어오기 전에 사용된 말이다. 여기에 한자가 들어와 "스승(師)"이라는 말의 뜻이 "스승 사"자에 내포되면서 다른 글자와 혼합하여 "스승"의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요컨대, "선생"이라는 교원(교사)의 부름의 말은 말뜻부터 잘못된 말이다. 최근에는 중국에서조차도 교원(교사)을 「선생」이라 부르지 않고 「老師(라오스)」라고 부르고 있다. 따라서 교원(교사)은 「스승」으로 호칭함이 마땅하다.
왜냐하면, 교원(교사)은 올바른 인간교육을 위한 전문직 중 전문직으로서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지식 전달자가 아니므로 사명감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학생들을 위해 남다른 사랑을 실천하는 봉사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원(교사)은 사회나 학생들로부터 존경받는 풍토속에서만이 사명감감을 가지게 되고 학생과 사회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스승의 날의 시작은 위에서부터 내려온 정책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자의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충남 강경여고 RCY 단원이었습니다. 청소년적십자인 RCY 단원들이 봉사활동으로 1958년부터 현직의 선생님과 병중에 계시거나 퇴직하신 선생님 위문을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63년 청소년 적십자 충남협의회에서 이를 의미 있게 보고 9월 21일을 충남도내 '은사의 날'로 정하고 일제히 사은 행사를 가지기로 하였습니다. 이를 본보기로 삼아 전국적으로 '은사의 날' 을 5월 24일로 정하여 기념할 것에 합의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64년 5월 '은사의 날' 을 '스승의 날' 로 고쳐 부르기로 하고 날짜도 5월 26일로 정하였습니다.
그러다 1965년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변경한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스승이 바로 한글을 창제하시고 백성을 살피신 세종대왕님이기 때문이죠. 제2회 스승의 날에는 대한적십자사에서 스승의 날 노래(윤석중 작사, 김대현 작곡)를 만들어 방송 및 기타 보도매체를 통해 보급함으로써 1966년부터 이 행사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러나 1973년 3월 모든 교육 관련 기념행사가 국민교육헌장선포일로 통합되었습니다. 이에 '스승의 날' 행사는 소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스승의 날 행사를 금지시켰습니다. 그러다 1982년 9년 만에 5월 15일 '스승의 날'이 다시 부활되어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기념되고 있으며 2011년 올해 48회를 맞고 있습니다.
이 날은 스승에 대한 존경하는 마음을 널리 선양하기 위해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여러 가지 행사를 각급 기관 및 단체별로 실시하는데, 교육 유공자 포상과 음악회·체육대회 등이 열립니다. 정부에서는 교육과학기술부 직원뿐 아니라 중앙·지방행정기관의 공직자, 국영기업체·정부투자기관·사회단체·일반기업체 임직원 등이 스승 찾아뵙기, 안부편지 보내기, 모교 및 자녀학교 방문하기 등의 운동에 참여하도록 권장하는 한편, 교육에 헌신 전념하는 우수 교원을 발굴하고, 교원의 사기 진작과 스승에 대한 존경 풍토를 조성할 목적으로 교육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큰 교원들에게 훈장·포장 및 대통령·교육과학기술부장관 표창 등을 수여합니다.
‘스승의 날(5월 15일)’은 1964년에 만들어졌으며 이듬해 기념일로 지정됐다. 이날은 세종대왕 탄신일(誕辰日)로 ‘이 세상의 모든 스승이 세종대왕처럼 존경받는 시대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됐다.
스승은 무당을 나타내는 무격(巫覡)에서 ‘여자 무당’을 말한다거나 중(僧)을 나타내는 ‘사승(師僧)’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우리가 흔히 스승이라 하면 ‘선생(先生)님’을 지칭하는데 先生이라는 단어는 보통 연장자에게 쓰였다. 그러다가 고려시대 이후 학문적으로 덕망이 높은 사람, 혹은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사람, 혹은 학예가 뛰어난 사람, 혹은 각 관청과 관아의 전임자를 가리키는 일종의 존칭 또는 경칭으로써 고대사회부터 근대사회까지 오랫동안 사용되던 호칭이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先生이란 호칭을 영어의 미스터처럼 보편적으로 성인 남자의 성씨, 혹은 본명 뒤에 붙이는 경칭으로 사용하는데, 특정 직업이나 기술 또는 학식이 풍부한 사람에 대해선 별도로 ‘스승 사(師)’를 사용해 ‘노사(老師)’라고 칭한다.
‘사(師)’는 본래 ‘퇴(𠂤)’로만 썼는데 이를 가로로 눕히면 구릉(丘陵)이 돼 ‘작은 언덕’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끝없이 펼쳐진 황토 평원에서 구릉의 기능은 홍수를 막아 주기도 하고, 쳐들어오는 적을 조기에 발견해 방어할 수 있도록 해 줬으며 심지어는 하늘과도 통할 수 있는 곳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고대 중국인들은 성(城), 왕릉(王陵) 등을 구릉에 세웠고, 성과 왕릉이 위치한 곳은 반드시 군대의 병졸(兵卒)들이 지키도록 해 ‘군사(軍師)’라는 뜻도 있다. 이후 군대의 ‘지도자’라는 뜻으로 확대돼 ‘스승·모범’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됐으며 ‘의사(醫師)’처럼 특정 직업이나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부르는 호칭에 사용되기도 했다.
이러한 의미들을 종합적으로 유추해 볼 때 스승이란 경험이 풍부한 지도자로서 인생이라는 험난한 여정에서 우리를 안전하고 이로운 곳으로 안내해 줄 한 줄기 빛 같은 존재이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옳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북두칠성 같은 든든한 존재라 생각한다. 즉, 스승의 역할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기본적인 책무와 교육자로서의 소명 의식에는 변함이 없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수 있는 나침반 같은 참된 스승(師)이 더욱더 절실히 필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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