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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자료

효(孝_등에 업힌 생명의 근원)

by 안녹산2023 2023.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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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는 부모에게 경애의 감정에 토대를 두고 행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일반용어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효는 어디에서든 강조되는 덕목이지만 한국의 효는 유교적인 효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유교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가 모든 도덕 규범의 기초이다. 『효경』에서는 효를 ‘하늘의 불변한 기준이요 땅의 떳떳함이다’라고 하여 우주적 원리로까지 승화시키고 있다. 효와 충이 충돌할 수도 있지만 ‘충신은 효자의 문에서 나온다’고 하여 효를 근본으로 하여 충을 조화시킨다. 더 나아가 부모의 사후에도 예를 갖추어 제사를 지내면서 효도를 다한다.

 

라 함은,  부모에게 경애의 감정에 토대를 두고 행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일반용어를 말한다. 이러한 행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나 존재하는 것이므로 유교 고유의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유교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가 도덕 규범의 기초이고, 더 나아가 국가로부터 가족에 이르기까지 최우선의 가르침으로 뿌리박고 있다는 사실에 그 독특성이 있다.

 

효란 본래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자녀가 지켜야 할 도덕을 의미함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유교인들은 사후의 영원을 바라고 효를 종교화하여 자손에게 반드시 조상의 제사를 지내도록 요구하고 있다. 개인은 하늘과 땅이라는 우주의 부모로부터 태어난 우주적 자아이자 육체의 부모로부터 태어난 가문적 자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세의 부모에 대한 효는 ‘생명(生命)의 근원’인 조상에 대한 공경과 보은의 출발점이자 전제가 된다. 제사는 초혼을 의미하며, 사후에도 현세에 돌아올 수 있다고 믿기에 조상에 대한 제사가 효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또한, 제사를 행하는 주체는 자손이기 때문에 자손, 특히 아들을 낳는 것이 효의 하나가 된다.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정성을 다하고, 죽은 뒤에는 경애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잘 지내고, 또한 아들을 낳아 제사가 끊기지 않도록 하는 것 전체가 효라고 생각되었다.

 

효에 대한 문헌 기록을 살펴보면, 가장 최초의 것으로 『서경』 순전(舜典)에 나오는 “삼가 오전을 아름답게 하라(愼徽五典).”는 구절을 들 수 있다. 오전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주희(朱熹)의 해석에 따른 오상설(五常說)로서, 맹자(孟子)의 오륜을 가리킨다.

 

다른 설은 “아비는 친하고(父親), 어미는 자애롭고(母慈), 자식은 효도하고(子孝), 형은 우애하고(兄友), 아우는 공순하다(弟恭).”라는 것이다. 후자의 내용은 효(孝) · 제(弟) · 자(慈)라는 가족 윤리의 근간이 된다.

유교 사상의 핵심적 도덕 규범인 효의 원초적 · 본질적인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공자(孔子)의 효에 대한 관념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 공자는 효의 본유 관념으로서 공경심을 강조하고 있다. 봉양하는 일뿐만 아니라 공경하는 마음(敬)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웃어른에 대한 예절로는 얼굴빛, 즉 존경하는 태도가 문제라고 하였다.

둘째,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효경』에서 “우리의 신체는 머리털에서 살갗에 이르기까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손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비롯이니라.”라고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셋째, 효는 공자로부터 이미 사후에까지 확대된 개념으로 드러난다. 즉, “살아 계실 때도 예로써 섬기고, 장례도 예로써 치르고, 제사도 예로써 모시라.”고 하였다. 여기서 유교의 상 · 제례가 조상숭배 사상과 결합하여 효 사상의 일부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맹자는 선진시대(先秦時代) 효 관념의 정립자라 할 만큼, 공자의 효 사상을 유교의 중심 사상으로 굳게 다져 놓았다. 그는 효를 백행(百行)의 근본으로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요 · 순의 도리도 효제(孝悌)일 따름이다.”라고 말함으로써, 효를 제왕의 도로 확대하였다. “효자의 지극함은 어버이를 높이는 일보다 더함은 없을 것이다. 어버이를 높이는 일의 지극함은 천하를 가지고 봉양해 드림보다 더함은 없을 것이다. 천자의 아비가 되니 높음의 지극함이요 천하로써 봉양하니 봉양의 지극함이니라.” 위의 구절에서 맹자는 제왕의 대효(大孝)를 말함과 동시에 입신양명을 효의 중요 요소로 부각시켰다.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인 진(秦)과 그 뒤 한대(漢代)를 거치면서, 사회적 · 정치적 변화에 따른 사상적 변화 속에서 효 사상도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것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주3 · 부위부강(夫爲婦綱)주4이라는 삼강 사상의 성립이다. 여기서 강이란 ‘모든 그물의 벼리’를 뜻하는 것이다. 즉, 임금[君] · 부모[父] · 지아비[夫]는 벼리가 되고, 신하[臣] · 자녀[子] · 지어미[婦]는 그물코가 되어 일방적인 군림 관계가 된다. 이에 따라 충 · 효 · 열도 권위에 바탕한 종속 윤리로 귀착된다. 따라서 강 사상이 선진의 윤리 개념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고대의 효 사상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효경』의 저작이다. 증자(曾子)의 저작이라고 믿어져 왔으나 실제 작자는 불분명하다. 저작 시기는 대체로 전국시대 말기로 추정된다. 『효경』은 봉건제도에 입각하고 있으며, 공맹의 효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는 하나 내용상 변화를 보이고 있다. 즉, 효의 대상이 군주와 상관까지 확대되어 있으며, 아비의 절대적 권위는 상대화되고 종족의 폐쇄성은 약화되고 있음이 드러난다. 결국, 효도를 천지간에 으뜸인 지덕요도(至德要道)로 삼고, 도덕에 의한 교화를 정치 지배의 수단으로 하는 것이다.

 

『효경』에서의 효의 의미를 살펴보면, 우선 효를 덕의 근본으로 삼고 있다. 효의 방법으로는 직접적이면서 기본적인 사친(事親)과, 간접적이면서 종국적인 입신행도(立身行道)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부모에 대한 윤리 도덕인 효를 “하늘의 불변한 기준이요 땅의 떳떳함이다(天之經 地之義).”라고 하여 우주적 원리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는 정치적 교화의 의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효 사상에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은, 또 다른 중요한 윤리인 ‘충’과 상호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가지 개념의 함의 안에 이미 모순적인 요소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효란 자신의 신체를 잘 보존하고 부모를 잘 봉양하며 종족을 보존해야 한다는 가족 사회를 바탕으로 한 윤리이다. 이에 대해, 충이란 때로 국가나 군주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다는 국가적 차원의 윤리이다. 따라서 마찰은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충신이 효자의 문에서 나온다.”고 하여 효를 근본으로 하여 조화시켜 왔다.

 

이러한 효 사상이 한국에서 전개된 과정을 살펴보면, 교육 기관을 통해 충의 사상과 아울러 고취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리적인 위치로 인해 고구려에서 최초로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소수림왕 2년(372) 중앙에 설치된 교육기관인 태학(太學)에서는 오경과 중국의 사서들을 상류 계급의 자제들에게 교육하였다. 백제의 경우 교육 기관을 통해 유학 교육을 실시한 문헌상의 기록은 없다. 다만 『삼국지』 변진전(弁辰傳)이나 당나라 때 편찬된 『주서(周書)』 백제조 등의 기록을 통해, 백제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했고 경학(經學)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신라의 경우는 삼국 가운데에서 가장 늦게 유학이 들어왔다. 지증왕(437∼514) 때에 ‘왕’이라는 호칭과 상복제(喪服制)를 사용했고, 유학 교육기관인 국학에서는 『논어』와 『효경』 등이 필수 과목이어서 충효 교육이 실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에 있어 특기할 만한 것은 화랑도의 지도 이념인 세속오계의 도덕 규범을 교육받은 화랑 가운데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다는 점이다. 『삼국사기』 열전에 기록된 김유신(金庾信) · 사다함(斯多含) · 관창(官昌) · 원술(元述) 등이 그들이다. 또한, 화랑 출신 이외에 박제상(朴堤上) · 김반굴(金盤屈) 등의 충신과, 『삼국사기』에서 효의 표본으로 기록된 향덕(向德), 효녀 지은(知恩), 설씨녀(薛氏女) 등이 그 이름을 빛내고 있다.

 

고려시대 역시 최고 교육기관으로 국자감을 설치하여 유교 경전을 학습하고, 상 · 중 · 하 3품에 걸쳐 『논어』 · 『효경』을 필수 과목으로 하였다. 이를 볼 때 유교적 충효 사상이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 효선편(孝善篇)에 실려 있는 효행에 관한 네 개의 미담은 인과응보의 불교적 사고가 배어 있고, 부처의 가호로 행복하게 되었다는 내용에서 공통점이 있다. 고유의 효 사상에 불교 문화가 가미된 새로운 효 관념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불교에서도 효는 중요한 덕목으로서 『효자보은경(孝子報恩經)』 · 『효자담경(孝子睒經)』 등의 책이 간행되었다. 유 · 불 · 선 삼교에 능통한 최치원(崔致遠)은 「난랑비서문(鸞郎碑序文)」에서 화랑 정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집에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아가서는 충성하라는 것은 공자의 말씀이다. 의식적으로 함이 없는(無爲) 일에 처하고, 말이 없는(不言) 가운데 가르침을 행하라는 것은 노자의 주장이다. 어떠한 죄라도 범하지 말고 모든 착한 일을 힘써 행하라는 것은 석가여래의 교지이다.”

 

고려 말에 편찬되었다고 전해지는 『명심보감』은 유학적 효 사상을 여러 중국 고전(효경 · 논어 · 맹자 등)에서 골라 엮은 명언집이다. 최초로 우리 나라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수신서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효 관념은 『효경』 · 『논어』 등을 이론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정도였다. 효 관념이 정치적 · 사회적 규범으로 체계화되는 것은 조선조 주자학의 형성과 전개 과정 속에서 가능하였다.

 

고려 왕조를 대신한 조선 사회는 백성을 교도하는 새로운 도덕적 규범과 준칙을 채용하려고 하였다. 여기에서 조선 사회는 충효를 근본으로 하는 삼강오륜에 힘쓰게 된 것이다. 주자학을 지도 이념으로 삼은 조선 왕조는 충효 사상을 국민에게 널리 보급하고 고취시키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였다.

 

세종 13년(1431)에는 설순(偰循) 등이 편찬한 『삼강행실도』가 간행되었다. 이것은 중국과 우리 나라의 충신 · 효자 · 열녀 각 35인의 행적을 그림으로 설명한 것이다. 중종 13년(1518)에는 조신(曺伸)이 편찬한 『이륜행실도』, 광해군 때는 유근(柳根) 등이 편찬한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 정조 때에는 앞에 나온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하여 개편한 『오륜행실도』 등이 발간, 반포되었다. 이들 행실도는 모두 효자 · 충신 · 열녀의 순으로 되어 있어, 효가 정치적 · 사회적 질서의 근본 규범으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정형화된 오륜 사상에는 부자유친이 군신 · 부부 · 장유 · 붕우의 인간 관계에 앞서 있다. 즉, 삼강의 군신 · 부자 · 부부 관계를 발전시켜, 맹자에 이르러 실천 도덕으로 완성된 오륜 사상을 받아들이고, 효를 오륜의 제일의(第一義)로 삼았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이렇듯 보편적인 성격을 띤 효 관념은 고려 말에 주자학이 수용되고, 조선시대에 성리학 사상이 체계화되면서 철학적 · 이론적인 기초를 확립하게 되었다. 성리학에서는 보편적인 이(理)가 인간에게 내재하여 성(性)이 되고, 인간 사회의 도덕 규범으로서의 오륜적 질서는 인간에게 내재된 성의 현현(顯現)으로 이해된다.

 

이황(李滉)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자(慈)이고, 자녀가 부모를 잘 받드는 것이 효이다. 효자의 도리는 천성에서 나오는 것으로, 모든 선의 으뜸이 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효자라는 도덕 규범의 보편적 · 기본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주희의 말을 인용하여, “어버이를 섬기는 정성에 인하여 그로써 하늘을 받드는 도리를 밝힌다.”라고 하였다. 인간 사회에 있어서의 모든 질서의 근원은 효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육신의 부모를 섬기는 것이 만물의 부모인 하늘을 섬기는 것과 구조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이이(李珥)의 효 사상은 『격몽요결(擊蒙要訣)』에 잘 나타나 있다. 이것은 젊은이들에게 입지(立志) · 지신(持身) · 효행 · 제례 · 지인(持人) 등을 가르치기 위한 수신서이다. 그는 첫머리에서 오륜을 풀어 부자(父慈) · 자효(子孝) · 신충(臣忠) · 부부별(夫婦別) · 형제우(兄弟友) · 붕우신(朋友信)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이의 시대에 이르면 수신과 효행에 구체적 조건이 따르고, 아비의 자애보다는 자식의 효도에 중점이 두어진다. 그리하여 공순(恭順) · 수종(隨從) · 부양(扶養) · 안락(安樂) · 제사(祭祀, 遺志繼承) 등이 효의 5대 원리라 할 만큼 강조되었다. 부자(父慈)의 도에 대해서는 언급되고 있지 않다. 이와 같이, 이황에서 이이에 이르는 조선시대의 정통 도학에 있어서는 효 관념이 성리학의 우주론이나 인간론의 이해를 통해 인간의 내면적 · 보편적 규범으로 확립되었다.

 

17세기 말부터 18, 19세기에 이르면서 점차 정통 성리학에 대한 비판 의식이 일어나면서 효에 대한 의식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이익(李瀷)의 경우를 보면, 『성호사설』 권3에 충효를 말하면서 충이 앞서고 효가 뒤를 따르며, 충에 이르려면 효가 있어야 하고, 효가 아니면 곧 불충(不忠)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곧 효보다 충을 우선하는 태도이다.

 

성리학에 비판적이었던 소수의 실학자들은 치인양성(治人養性)에 주목적을 두었던 성리학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과거제 폐지와 양반의 취업 등을 주장하였다. 즉, 국가 의식을 가족 의식보다 우위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효가 이루어지면 다른 덕목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생각했던 조선 초기의 사상에 반기를 든 셈이다.

 

이는 임진왜란 · 병자호란 등의 국난을 겪은 새 시대에 일어난 충효 사상의 변화라고 할 것이다. 이른바 ‘서양과의 만남’, 그리고 근대화의 물결과 접하면서 실학자들은 상공업 진흥을 위해 양반도 노동해야 하며 과학을 배우고 서양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러한 풍조가 일어나자 윤리관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그 예로서, 동학의 효 관념을 보면, 「팔리훈강령(八理訓綱領)」에서 효행에 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대효(大孝)란 지효(至孝)를 말함이다. 한 사람이 능히 한 나라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또 능히 천하의 사람들을 느끼도록 하나니, 천하의 지성이 아니면 어찌 이에 이르리오. 사람이 느끼면 하늘도 또한 느끼느니라.” 이처럼 효의 어려움을 말하고, 효행의 실천을 안애(安哀) · 쇄애(鎖愛) · 순지(順志) · 양체(養體) · 양구(養口) · 신명(迅命) · 망형(忘形) 등으로 가르쳤다.

 

천도교의 효 사상은 유교와 달리 충과 연결시키지 않고 천의(天意)와 연결시킨 특징이 있다. 실천 윤리는 크게 다를 바 없지만, 효가 어려운 이유를 천의에 맞게 지신하기 어려움과 같은 것이라고 보았다. 개화 사상이 일어나면서 윤리적 가치는 분화되어 나타난다. 19세기에 이르면 가족 윤리와 국가 윤리, 그리고 · 사회 윤리를 따로 생각하게 된다. 즉, 효 · 충 · 신을 덕목으로 하되 그 대상을 부모-자식, 임금-신하, 이웃-이웃의 인간 관계로 설명하게 된다.

 

효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으뜸가는 덕목으로 국한된다. 다시 말하면, 충 · 효 · 신의 기능이 나누어지고, 각 덕목이 독립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이 효 사상은 본질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으나 시대적인 변화를 겪어왔다. 전통 사회에서 효 윤리는 가족을 결속시키고 사회 풍속을 순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반면 효도 예절이 형식적으로 고정화 · 관습화되어 개인의 진취적 기상을 억압하고 사회의 합리적 개혁을 둔화시켰던 부정적 측면도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효의 본질을 재인식하고 그 참된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요구된다.

 

 

 

효도할 효

 

 

 

한자의 노(老)는 허리 굽은 늙은이가 지팡이를 짚고 있는 모양을 본뜬 상형 문자라고 한다. 몇천 년을 두고 내려오는 동안에 그 자형이 많이 변한 탓도 있겠지만 아무리 보아도 초라한 늙은이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원로(元老)니 노숙(老熟)이니 하는 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글자의 인상은 매우 기품이 있어 보인다. 실제로 노인이란 말이 꼭 늙어 꼬부라진 사람만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노형(老兄)이라는 말처럼 연령과 관계없이 존경하는 사람이나 슬기로운 사람에게도 노 자를 붙여준다. 그러므로 그 유명한 <헌화가>에 나오는 노인도 꼭 늙은이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노인이 어떻게 그 가파른 절벽 위의 진달래를 따다 바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나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면"

 

이라는 말로 미루어보더라도 그는 수로 부인(水路婦人)이 내외를 할 정도의 젊은이였을 것이 분명하다. 

 

고(考) 자를 보면 알 수 있다. 원래 고 자도 노(老) 자와 마찬가지로 허리가 굽은 노인을 가리키는 문자였다고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고(考)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노인은 매사를 신중하게 생각하고 사려 깊게 행동한다고 해서 노인을 뜻했던 고(考) 자는 상고하고 헤아린다는 뜻으로 변하고 말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의 노인이란 말은 모멸적인 뜻이 내포된 영어의 올드 맨(Old man)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그리고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는 일본어의 그 노진(노인)과도 뉘앙스가 사뭇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똑같은 한자로 된 노인(老人)인데도 그 말을 극력 피하고 실버라는 영어로 대신한다. 그래서 우리는 경로석이라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실버 시트라고 부른다. 실버 인재 센터, 실버 볼룬티어(Silver Volunteer), 실버 산업 등 노인과 관련된 것이면 모두 실버 자를 붙인다. 때로는 실버가 풀 문(Full Moon)이라는 말로 바뀌기도 한다. 노인 승객을 유치하기 위한 우대권 명칭이 그렇다. 또 10년 전에 일본의 후생성에서는 중년과 노년이라는 말이 일종의 차별어처럼 나쁜 인상을 준다 해서 그와 대치할 명칭을 현상 공모한 적도 있었다. 그 결과로 지금은 50세에서 69세까지를 실년(實年), 70세 이상을 숙년(熟年)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노인이라는 말이 아직도 점잖게 그리고 권위 있게 들리는 나라에 살고 있다. 말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의 경우처럼 그렇게 위엄이 있고 당당한 풍모를 한 노인들은 아마도 오늘날의 이 지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초현대식 고층 빌딩이 늘어선 거리를 효도 관광의 띠를 두른 버스가 질주하고 있는 그런 도시도 없을 것이다.

 

노(老) 자에서 아래 획을 생략하고 그 자리에 아들 자(子) 자를 받치면 바로 효도할 효(孝)라는 글자가 된다. 아들이 늙으신 부모를 업고 있는 것을 나타낸 회의 문자라고 한다. 그 글자 뜻대로 효는 윤리적이기보다 논리적이다. 자식이 어렸을 때는 그 부모가 업어주고 부모가 늙을 때는 그 자식이 업어준다. 논리적으로 따져봐도 정확한 계산이 아닌가. 그리고 상업적 거래로 봐도 공정하지 않은가. 남이라 해도 은공을 입었으면 갚는 것이 도리인데, 그리고 그것이 근대 시민의 기브앤드 테이크(Give and Take)의 윤리인데 어째서 불효가 근대 사회의 특성처럼 번져가는가. 한마디로 서구 문명과 그 문화는 불효의 문명이요, 불효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서구의 부자 관계만을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산업주의가 공해를 몰고 온 것이 바로 불효 문명이라는 이야기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태어난 것이다. 그 문화 문명도 다 같이 자연에서 가져온 것이다. 인간을 자식이라고 한다면 자연은 그 자식을 낳고 기른 어버이와 다름없다. 그러나 그 근원을 망각하고 도리어 자연을 학대하고 파괴했다. 그리고 그 불효에서 저질러진 벌이 공해라고 할 수 있다. 청년은 정보에 민감하고, 중년은 지식을 축적하고 노인은 지혜로 살아간다. 지식과 정보의 근원은 지혜에 의해서 결정된다. 정보화 사회의 근원은 무엇인가. 지혜를 얻기 위한 것이며 삶의 근원을 알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효의 사상은 본질과 근원을 향한 슬기의 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시대 착오적인 윤리가 아니라 오히려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확실한 인과 법칙에서 나온 지성의 산물이다. 효의 사상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말은 정보가 지식이 되고, 지식이 지혜로 성숙해 가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이야기와 같은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듯, 현대의 효는 자연을 공경하는 일이다. 그래서 효라는 개념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서 재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효도할 효

 

 

흔히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를 천륜이라고 하는데, 전통사회에서 효는 자식의 부모에 대한 경애를 기초로 성립하는 도덕이다. 그러므로 자식은 자신을 낳아 길러 준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며 순수한 그 노고에 보답하고자 물질적․정신적으로 정성을 다해 봉양하는 것이다. 그래서 효자는 부모를 섬김에 있어 슬하에 있을 때는 공경을, 봉양함에 있어서는 즐거움을, 병이 났을 때는 근심을, 돌아갔을 때는 슬픔을, 제사지낼 때는 엄숙함을 다하여야 한다는 생전의 정성봉양과 사후의 제사봉양이 강조된다.

 

사후에는 초혼(招魂)을 의미하는 제사를 통해 후손을 만나기 위해 현세로 돌아올 수 있는데, 그 제사를 행하는 주체가 아들이기 때문에 결혼하여 아들을 낳는 것이 중요했다. 왜냐하면 조상과 후손은 모두 유한한 존재로 죽지만 아들의 제사를 통해 조상의 죽음은 망각이 아니라 기억의 공간에서 후손과 연결된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효를 통하여 죽지 않고 영생한다는 이론적 근거가 되게 된다. 그래서 본 논문에서는 효의 의미와 변화를 중심으로 ‘효와 불효’․‘효와 충의 관계’ 나아가 유가의 효 확산으로 공자․맹자․퇴계의 효와 동아시아의 권선서를 대표하는 『명심보감』를 비롯한 고전의 예화에서 보이는 효의 특징을 고찰했다. 또 이 전통적 효를 바탕으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당면한 인생의 고독과 노고를 감싸줄 수 있는 책임성 있는 부모봉양과 가족부양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 진정한 효의 의미는 어떤 것인가와 ‘효’와 ‘충’의 장단점을 통한 바람직한 효충의 관념을 제시하였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삼국인 중국과 일본은 전통적으로 유교사상에 의한 ‘孝(효)’를 굉장히 강조했단다. 부모님은 나를 낳아주시었으니 내 몸은 바로 부모님의 육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자기의 몸이지만 다치지 말라는 가르침도 있단다. 조금 어려운 말이지만 우리말로 번역하면 이렇다.
 
“몸과 피부와 머리칼은 부모님께서 받은 것이지 조금이라도 다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그래서 전통사회에서는 남자들도 머리를 기르고 수염도 기르고 한 것이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목숨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겼단다. 물론 지금의 상황에서 보면 조금 심하다고 표현할 수 있지만 그 때 당시의 상황으로는 그게 효의 근본이라고 본 것이기 때문에 그 당시의 상황으로 이해하면 그리 이상할 것은 없다고 본다.
 
‘孝(효)’라는 한자는 ‘耂(늙을 로)+子(아들 자)’가 합쳐서 만들어진 한자다. 늙으신 부모님을 자식이 업어드리는 글자다. 그래서 자식으로서 늙으신 부모님을 잘 받들어 모신다는 의미란다. ‘孝(효)’라는 말도 우리말에 없어서 한자어 그대로 ‘효도 효’라고 읽는 것이다. 율곡 이이 선생님은 ‘효는 모든 행동의 근원이다.’라는 말도 하셨다. 이렇게 효를 강조하는 이유는 부모님이 살아있을 때 자식으로서의 자세를 올바르게 다해야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 부모에 대한 여한이 없기 때문이지. 물론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효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공자의 제자 중에 자유(子游)라는 사람이 그래서 효의 의미를 몰라서 스승인 공자님께 물은 것이 아니라 진정한 효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이 있다. 효도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는 중요한 말인 것 같다. 아마도 효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고민한 것 같다.

子游問孝한대 子曰今之孝者는 是謂能養이니 至於犬馬하여도 皆能有養이니 不敬이면 何以別乎리오.

“자유(子游)가 효에 대해서 물으니 공자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의 효라는 것은 봉양할 수 있음을 말할 뿐이니 개나 말에 이르러서도 모두 봉양함이 있으니 공경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
 
자유는 공자의 제자라고 앞에서 이미 이야기했지. ‘물을 問(문)’자는 앞에서도 여러 번 나왔으니 이제는 한자를 완전하게 익혔으리라 생각한다.

‘효도 孝(효)’자도 설명을 했다. ‘孝道(효도)’라고 할 때는 ‘도’는 ‘길 도’ 또는 ‘도리 도’라고 한다. 자식으로서 부모님께 올바른 도리를 다한다는 의미가 되겠지.
 
‘子曰(자왈)’이라는 말도 앞에서 여러 번 나왔기에 이제는 설명을 안 해도 되겠지?
‘今’은 ‘이제 금’이라고 읽는다. 현재를 말할 때 ‘至今(지금)’이라고 쓴다. 조금 어려운 말이지만 ‘요사이’라는 말은 ‘昨今(작금)’이라고 쓴다.
 
‘갈 之(지)’는 앞에서도 여러 번 설명했다. 여기서는 ‘〜의’의 뜻으로 쓰였다.
‘사람 者(자)’자가 문제가 된다. 보통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한문에서는 종종 ‘〜라는 것’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한문을 잘못 해석할 수도 있단다. ‘효도하는 사람(孝者)’이라고 풀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장은 한문을 하면서 자주 보면 곧 알게 될 거다. 그래서 위와 같인 ‘효라는 것은’이라고 풀이하게 된 것이다.
 
‘이 是(시)’는 ‘이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현대 중국어에서는 주로 ‘〜이다’는 뜻으로 쓰인단다. 또한 ‘이것’이라는 ‘지시대명사’로도 쓰인다. 지시대명사라는 문법 용어도 조금 어렵게 느껴지나? 영어에서와 같이 ‘이것, 저것’과 같이 쓰이는 말을 지시대명사라고 하니까 국어시간에도 배웠을 것이다. 여기서는 앞의 ‘효(孝)’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를 謂(위)’자는 ‘〜라고 말한다’의 뜻으로 쓰였다. 다음에 나오는 내용을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앞에 말씀 言(언)이 있으니 말한다의 뜻임을 이해할 수 있겠지. 그리고 뒤의 글자는 우리 몸속의 소화기관인 ‘위장(胃腸)’을 뜻하는 글자란다. 그래서 이 한자의 소리(음)를 나타낸다.
 
‘능할 能(능)’자는 할 수 있다는 뜻이다. ‘能力(능력)’ ‘可能性(가능성)’ 등에 쓰이는 한자다.
‘기를 養(양)’자는 위에 글자가 ‘양 羊(양)’자가 음을 나타낸다. 아래의 글자는 ‘먹을 食(식)’자다. 그러니 먹여서 기른다는 뜻이다. 보통 동물을 기른다는 의미로 이 글자를 쓰지. 물고기 기르는 것은 ‘養魚(양어)’요 돼지 기르는 것은 ‘養豚(양돈)’이라고 하지. 그때 쓰는 말인데 사람한테는 ‘奉養(봉양)’이라는 말을 쓴단다. 받들어서 모신다는 의미가 되지. ‘받들 奉(봉)’자를 쓰는 이유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모시기 때문이란다.
 
‘이를 至(지)’는 어디에 이르른다는 뜻이다. ‘어조사 於(어)’는 ‘〜에(서)’라는 뜻으로 쓰였다. 이러한 것을 문법적으로 ‘처소격조사’라고 한다. ‘개 犬(견)’자와 ‘말 馬(마)’자는 많이 사용하고 있으니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至於犬馬(지어견마)’는 ‘개나 말에 이르러서도’라고 풀이되는 것이다. 개나 말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니까 그렇게 비유를 한 것이다.
 
‘다 皆(개)’는 ‘모두’라는 뜻이다. 학교를 하나도 빠지지 않으면 상을 받지. ‘皆勤賞(개근상)’이라고 할 때 쓰이는 한자다.
 
‘있을 有(유)’자는 ‘있다’는 뜻으로 앞에서도 설명했다. ‘能養(능양)’도 앞에서 설명했으니 문장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니까 지금의 효라는 것은 그저 보양하는 것만 일컬으니 개나 말에 이르러서도 모두 먹이를 주어 기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지? 늙으신 부모님께 아무 감정이 없이 그냥 동물에게 먹이나 주듯이 기르기만 한다면 말이다. 무엇이 있어야 하지? 바로 ‘공경’이란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자식도 부모를 공경으로 대해야 됨을 그 다음 문장에 나온단다.
 
‘아닐 不(불)’자는 ‘아니다’는 뜻으로 쓰이는 것은 이미 배웠다.
‘공경할 敬(경)’자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자세로 받드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어른을 뵈면 ‘敬禮(경례)’한다고 하는 것이다. 공경하게 예의를 다하는 것이지. 공경함이 없는 게 ‘不敬(불경)’이란다. 사람이니까 당연히 공경함이 있어야겠지. 그래서 옛날에는 ‘不敬罪(불경죄)’라는 것이 있어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공경하지 않으면 죄를 엄하게 받았단다. 왜? 사람이니까 당연히 공경하는 자세를 가지라는 뜻이란다.
 
‘어찌 何(하)’자는 ‘어찌, 어떻게, 무엇으로’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글을 쓸 때나 말을 할 때 반드시 지켜야할 여섯 가지 원칙을 ‘육하원칙(六何原則)’이라고 할 때 쓰는 말이다. 여기서는 ‘何以〜乎?’의 문장 형태를 이루어 사용된다. ‘어찌 〜하리오?’ ‘어떻게 〜하겠는가?’의 뜻으로 쓰인다. ‘써 以(이)’는 앞에서도 설명했다. ‘〜으로써’의 뜻으로 쓰이는 한자다.

‘어조사 乎(호)’는 주로 의문문에 많이 사용된단다. 감탄사로도 쓰이지. 여기서는 의문문의 형태로 쓰였다.
‘다를 別(별)’자는 ‘다르다’는 뜻이니까 어렵지 않고. ‘區別(구별)’한다고 쓴다. 또 ‘差別(차별), 離別(이별)’이라는 낱말도 있다.
 
이와 같이 한자의 뜻풀이를 보면서 문장을 이해하면 ‘何以別乎(하이별호)’는 ‘어떻게 혹은 무엇으로써 구별하겠는가?’라고 풀이된다. 동물과 사람의 차이를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지. 아마도 당시는 굉장히 혼란한 사회이다 보니 사람들이 효의 의미를 단순히 음식을 봉양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러면 전체적인 내용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해 보면서 문장을 이해해볼까?

‘子游問孝(자유문효)’ ‘자유가 효에 대해서 물었다.’는 그 당시 사람들이 효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 그렇게 물은 것 같다. 그러니까 공자님의 대답이 효의 진정한 의미로 대답을 하는 것이다.

子曰今之孝者(자왈금지효자)’ ‘공자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의 효라는 것은’ 효의 의미가 지금에 와서 잘못 쓰이고 있으니까 ‘지금’이라는 낱말을 사용하고 있지.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다는 의미임을 문장의 반대로 이해하면 되니까.
 
‘是謂能養(시위능양)’ ‘봉양할 수 있음만을 말한다.’ 봉양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 부모니께 효도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이 살아계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님을 받들어 모셔야함은 당연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효도라는 것이 단순히 동물을 기르듯이 보양하기만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 사람과 동물은 엄연히 다른 존재인데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至於犬馬 皆能有養(지어견마 개능유양)’ ‘개나 말에 이르러서도 모두 기름이 있을 수 있다.’ 개나 말들도 얼마든지 먹이를 주어서 기를 수 있쟎니? 그렇다면 동물을 기르는 것과 차이가 없다고 보는 것이지. 요즘 애완용 동물 기르는 사람이 많은데 애완용 동물을 기르듯이 하면 안 되겠지? 물론 동물들도 정성을 다해야 하지만 사람 특히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는 것과는 달라야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결론을 내린다.
 
‘不敬 何以別乎(불경 하이별호)’ ‘공경함이 없으면 어떻게 구별하겠는가?’ 공경함이 없으면 개나 말을 기르는 것과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문장을 조금 어려운 말로 ‘반어문’이라고 한다. 반대의 뜻으로 물어서 말의 뜻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문장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효도는 반드시 ‘공경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께 효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님을 공경하는 자세란다. 부모님의 말씀에 성질이나 투정을 부리고 함부로 말하면 개나 말과 같은 동물들의 행위와 별 차이가 없다. 지금은 학생이니까 부모님을 봉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모님의 말씀 잘 듣고 건강하게 공부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어른이 되었을 때 부모님을 봉양할 때가 되면 효의 진정한 의미인 공경으로 받들어 모시는 것이란다.
 
영어에는 우리가 쓰는 것과 같은 ‘효’라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효에 해당하는 낱말을 만들어 쓴다고 한다. 'filial piety(자식으로서의 공경성)‘ 정도로 쓴단다. 우리와는 문화가 다르고 효에 대한 의미를 다르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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