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뜻하는 인(人) 변에 나무 목(木) 자를 쓰면 휴(休) 자가 된다. 글자의 모양 그대로 사람이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 글자이다. 실제로 나그네와 마을 사람을 위해서 중국 사람들은 마을 어귀마다 나무를 심었다. 한국의 정자나무도 마찬가지다. 한자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은
"앞 사람이 나무를 심으면 뒷사람이 그 서늘한 그늘에서 쉴 수 있다."
는 속담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미국에도 이와 비슷한 속담이 있다는 점이다. 18세기 때 미국의 개척자 존 채프먼은 평생을 길가에 사과 씨와 사과나무를 심고 다닌 사람으로 유명하다. 다음 세대의 개척자들과 나그네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래서
"자니의 사과 씨_Jonny Appleseed"
라는 숙어가 생겨난 것이다.
다음 사람을 위해서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없지만 나무를 심는 목적이나 그 이미지는 아주 대조적이다. 중국의 나무 심기는 한자의 휴(休) 자처럼 쉬는 데 있고 미국의 그것은 먹는데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에서 그늘을 찾으려는 것은 마음의 풍요를 위한 것이고 나무에서 열매를 얻으려는 것은 물질의 풍유를 얻기 위해서이다.
언뜻 생각해 보면 중국 사람의 나무 심기 정신은 비생산적인 게으름으로 보이기 쉽다. 그에 비해서 자니 같은 미국의 식수관(植樹觀)은 오늘의 미국 문명과 번영을 가져온 적극성과 공리성이 들어 있다. 하지만 쉬는 것을 비생산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쉰다는 것, 마음을 비우고 있는 자유로운 시간을 갖는다는 것, 인간에게 중대한 전기를 마련해 준 것은 대개가 다 이런 나무 그늘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기에 진정한 생산성은 동양에서 제시하는 휴(休)에 있는 것이다.
뉴턴의 3대 발견이라는 만유인력, 빛의 스펙톨 그리고 미분과 적분이 모두 그렇게 해서 생겨났다. 페스트로 대학이 18개월 동안 문을 닫게 되자 뉴턴이 고향 집으로 돌아가 쉬고 있는 동안에 바로 인류의 사고를 바꿔놓았다는 그 아이디어를 얻게 된 것이다. 존 채프먼처럼 사과를 보면 그 씨를 심을 생각만 하고 다녔더라면 어떻게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지구의 중력을 상상해 낼 수 있었을 것인가?
사람이라 해도 먹는 것을 위해 일할 때에는 짐승이 먹이를 쫓고 있는 순간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오히려 작업중에도 잡담을 하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보다는 아무 잡념 없이 있는 힘을 다해 사슴을 쫓고 있는 표범의 모습이 오히려 더 진지하고 숭고해 보일는지 모른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 바로 그 쉴 때이다. 짐승이 쉬는 방법은 기껏해야 쓰러져 자는 것이다. 원숭이는 생김새만 사람과 비슷한 게 아니라 쉴 때가 되면 서로 모여 놀이를 할 줄 안다는 점에서도 다른 짐승과 구별된다.
쉬기 위해서 나무 그늘을 문화 속에 끌어들인 것이 한국의 그 유명한 정자이다. 경치 좋고 이름난 터에 가면 반드시 정자가 서 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바둑을 두고 시를 짓고 한담을 나눈다. 정자가 그냥 누워서 잠이나 자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은 정자에 붙여진 현판 이름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희우정'이니 '안식정'이니 하는 사색적이고 심미적인 문자를 보면 쉬는 공간은 소비가 아니라 창조의 공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쉰다'는 한국말 속에 바로 쉬는 문화의 뜻이 제대로 담겨 있다. 숨을 쉰다는 말과 일손을 놓고 쉰다는 말은 같은 말이다. 바쁜 것을 표현하는 말 중에 숨쉴 틈도 없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쉰다는 것은 그야말로 숨을 쉬는 행위처럼 절대 불가결의 것이다. 쉬지 않으면 숨통이 막혀 죽게 된다. 얼마나 숨 막히게 일을 했으면 숨을 쉬는 것이 쉰다는 말이 되었겠는가?
그러고 보니 갑골 문자에서는 휴(休) 자를 사람 인(人) 변에 나무 목(木) 자를 쓴 것이 아니라 곡식을 뜻하는 벼 화(禾) 자를 썼다는 사실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리고 그 뜻도 글자의 생김새대로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곡식을 기른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즉 휴양(休養)이라고 할 때의 양(養)과 같은 의미를 지닌 글자였다는 것이다. 사람이 밭에서 곡식을 가꾸고 기르는 노동이 어느새 나무 그늘에서 숨을 돌리고 쉬는 뜻으로 바뀌었는지 생각할수록 의미 심장하다.
인간의 산업도 그렇게 변해 왔다고 할 것이다. 산업 사회는 물건을 만드는 일이지만 서비스 산업을 기축으로 한 정보화 사회에서는 노는 산업, 쉬는 산업이 그것을 주도하게 된다. 영어로 말하자면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 또는 교량이나 집 그리고 길과 도시를 세우는 일은 컨스트럭션(construction)이라고 하지만 영화 축제 디즈니랜드 같은 휴식 공간이나 소프트를 만들어내는 일은 프로덕션(production)이라고 한다.
나무 그늘 산업이 미래를 지배한다. 인류 역사상 현대인처럼 그렇게 바쁘게 일만 하면서 살아온 적도 별로 없었다. 아무리 가난 속에서 살았던 농민들이라 해도 겨울철이면 3개월 가까이 놀았다. 서양 사람들이라 해도 로마 제국의 말기인 4세기 이후 때에는 한 해 동안 공휴일 축제일이 지그마치 1백 84일이나 되었다고 한다. 일하는 날이라 해도 노동 시간은 오늘날보다도 훨씬 짧았다는 것이다. 중세 때의 인간들은 세계 어디에서나 일할 때 일하지 않는 것보다 일해서는 안 될 때 일하는 것을 훨씬 더 중한 죄로 다스렸다. 그것이 그 유명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형벌이었다.
한마디로 중세 때 인간들을 놀이형 인간(Homo ludence)이라고 한다면 근대의 인간들은 노동형 인간(Homo laborance)이라고 정이할 수가 있다. 그리고 포스트모던(후기 근대)은 여러 가지 징후에서 중세와 닮은 데가 많다고들 한다. 앞으로는 생산 제일주의의 근대적 가치관이나 사고만을 가지고는 미래에 살아남기 힘들다. 오히려 숨을 '쉬'면서 쉬엄쉬엄 일하는 전통적인 한국인의 노동 방식이 미래의 문명에는 강점이 될 수도 있다. 일에 놀이의 요 소를 끌어들이고 육체 노동에 정신적 보람을 주는 정자(亭子) 문화의 공간을 생산 현장에 살려가야 한다. 곡식을 기르는 일과 나무 그늘에 누워 쉬는 것이 한 글자였듯이 앞으로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휴양 산업이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휴(休) 자를 주목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원래 휴(休) 자는 사람이 나누 그늘에서 쉰다는 뜻이 아니라 군문(軍門)에서 경사스러운 일이 있어 상을 받는다는 뜻이라는 또 다른 설에 대해서도 수긍이 간다. 휴의 기본은 축제 문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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