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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자료

편작(扁鵲_여섯 가지 한국 병)

by 안녹산2023 2023.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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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작

 

 

 

"편작이 열이 와도 못 고친다." 

 

는 말이 있다. 편작과 같은 명의도 고칠 수 없는 난치병을 두고 한 소리다. 송강의 가사에도 "편작이 열이 오나"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경우에는 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병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기(史記)>를 보면 죽었던 조간자(趙簡子)를 살려낸 그였지만 스스로 자신이 못 고치는 병의 경우를 여섯 가지나 들고 있다. 얼마나 대단한 병이기에 편작도 한숨을 쉬고 그 도규를 버렸겠는가?

 

그가 제일 먼저 손꼽고 있는 난치

 

제1조는 제멋대로 행동하여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의 경우이다.

제2조는 재물에만 욕심이 있어 몸을 돌보지 않는 경우,

제3조가 입고 먹는 생활이 적절하지 않는 경우이다.

제4조는 음약이 모두 막혀 움직이지 않고 그 균형을 잃은 경우이며,

제5조는 극도의 영양실조는 약조차 먹을 수 없이 쇠약해진 경우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든 것이

제6조는 무당을 믿고 의사를 믿지 않는 경우라고 했다. 

 

편작을 울린 이 여섯 가지 조항들은 언뜻 보기에는 별로 어려운 문제처럼 보이지 않는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금세 고칠 수 있는 조건들이다. 첫 번째 조항은 당장 독선이나 독재를 버리고 그 체질과 의식을 민주화하면 된다. 둘째 조항 역시 돈에 대한 욕심만 버리면 된다. 그리고 3,  4, 5조의 경우는 반대로 경제 문제를 해결하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든 것도 믿음의 문제이므로 헛된 귀신을 마음속에서 몰아내는 각오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편작이 간 지 2천 5백 년이나 되었는데도 아직도 이 여섯 가지 난치병은 그대로 살아 있다. 아무리 의술이 발달하고 첨단과학 기술과 경제가 발전했어도 그러한 조항들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백약이 무효이다. 결국 그 여섯 조항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병을 고치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편작은 남들이 자신의 의술을 칭찬할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다는 것이다. "아니올시다. 살 사라을 살렸을 뿐입니다. 단지 월인(越人_편작의 이름)은 그 힘을 일으켜[起] 주었을 뿐이오."

 

원래 인간은 스스로 그 내부에 생명력과 치유력을 지니고 있다. 의술은 그것을 도와주고 일으키는 역할만 하면 된다. 이런 생각이야 말로 '이빨을 가위로, 위를 항아리로, 가슴을 풀무로 그리고 심장을 펌프로 보고 있는' 인체 기계론 같은 서양 의학과 구별되는 한방 의학의 근본 정신이라 할 수 있다.

 

학생들의 폭력 시위, 탈법 노사 분규 등은 과거의 유물이 되어 버렸고 대신 독선과 독재의 아집, 황금 만능 주의와 절대 빈곤, 균형성을 잃은 극단적 사고, 낡은 이데올로기의 귀신을 모시고 사는 광신자들....... 편작이 열이 와도 못 고치는 이러한 병들은 환부를 도려내고 심장 이식 수술을 하는 양의학적 방법으로도 실효를 거둘 수가 없을 것 같다. 그 난치 여서 조항부터 하나씩 따져보고 바꿔가는 자기 치유의 노력 없이는 편자기 열이 와도 한국 병은 어렵다. 

 

 

편작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춘추시대에 발해군(오늘날 하북성 동남부와 산동성 서북부) 출신의 편작이란 명의가 있었다. 그는 명의의 원조격으로 그 의술이 얼마나 기가 막혔던지 죽은 사람도 살려낼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신의(神醫)’ 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편작의 의술 가운데 정작 신기한 대목은 그가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도 오장육부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신통력을 가졌다는 부분이다. 말하자면 얼굴이나 신체 구조만 보고도 병의 증세를 단박에 알아내는 능력을 가졌다는 말이다.

 

편작은 괵(虢 )이라는 나라에 갔다가 모두가 다 죽었다고 인정하여 장례를 치르기 직전에 있던 괵의 태자를 살려냄으로써 명성을 한껏 드날렸다. 이 일로 세상 사람들 모두가 편작은 죽은 사람조차 살려낼 수 있다고 여기기에 이른다. 하지만 편작은 “나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지 못한다. 다만 살아 날 수 있는 사람을 내가 일어날 수 있게 해주었을 분이다”라며 담담해 했다.

 

편작의 여러 신비로운 의료 행위 중에서 제(齊)나라 환후(桓侯)의 병세를 진단한 일이 가장 의미심장하다. 당시 편작은 환후의 병세를 간파하고는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환후는 편작이 자기 명성 때문에 멀쩡한 자신을 환자 취급한다며 무시했다.

 

편작은 2차 3차 경고했다. 그러나 환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네 번째로 환후를 찾은 편작은 환후의 얼굴만 보고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물러나왔다. 어리둥절해진 환후가 사람을 보내 그 까닭을 물으니 편작은 “병이 피부에 있는 동안에는 탕약과 고약으로 고칠 수 있소. 혈맥에 있을 때는 침이나 뜸으로 고칠 수 있고,장과 위에 침투했어도 약주로 고칠 수 있소. 하지만 병이 골수에 미치면 저승신이라도 해도 어쩔 수 없소. 그런데 지금 군의 병이 골수에 까지 파고들어 있어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외다”라고 답했다.

 

그로부터 다시 닷새 뒤 환후는 병으로 쓰러졌다. 황급히 사람을 보내 편작을 찾았으나 편작은 이미 떠난 뒤였다. 환후는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의사에도 등급이 있다. 첫눈에 병을 알아보는(看) 의사를 신의(神醫)라 하고, 목소리만 듣고(聞) 병을 아는 의사를 명의(名醫)라 한다. 증세를 물어보고(問) 병을 아는 의사를 평의(平醫)라 하고, 진맥해보고(診) 병을 아는 의사를 의원(醫員)이라 한다.

 

중국에는 춘추전국시대 편작(扁鵲)과 후한시대 화타(華佗)라는 신의 두 명이 있었다. 화타는 조조(曹操)에게 타살되면서 아내가 의서를 모두 태웠지만, 편작의 의술은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 자세히 남겼다(『사기 열전』 편작 편). 그는 기원전 500년에 발해에서 태어나 괵(虢)나라의 숨이 멎은 태자를 침술로 회생시켜 신의라는 명성을 얻었다. 편작이 어느 날 이런 말을 남겼다.

 

“나도 병을 못 고치는 환자가 여섯 명(六不治)이 있다. 첫째는 교만한 사람이고, 둘째는 인색한 사람이고, 셋째는 과식·폭음하는 사람이다. 넷째는 음양이 화목하지 못한 사람이고, 다섯째는 약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고, 여섯째는 아프면 무당부터 찾아가는 사람이다.”

 

그가 병명을 대지 않고, 병자의 습성을 지적한 것이 특이하다. 특히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음을 편하게 갖지 않고 근심이 쌓이는 것을 경계했다. 그가 못 고치는 병 가운데 음양이 조화롭지 못해 생긴 병을 고칠 수 없다는 지적이 큰 울림을 준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한 말이니 더욱 놀랍다. 그 시절에도 부부 갈등이 많았나 보다.

 

어느 시대인들 역사에 편한 날이 있었을까마는 요즘 세상은 살기가 참 어렵다. 특히 청소년 비행을 보면 영락없이 그 가정(부부)에 문제가 있다. 그 가정이 얼마나 사람 냄새나며 따스하게 사는가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화목한 목소리가 들리는 가정에는 도둑이 들었다가도 그냥 돌아간다고 어렸을 적에 어른들이 말씀하셨다. 살수록 따뜻함이 그리운 것은 나이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위나라 임금이 그 시대에 동양최고의 명의로 꼽히는 편작을 불러 누가 가장 명의인지를 물었다고 한다. 편작의 대답인 즉 자신의 큰 형이 제일 명의이고, 둘째 형이 그 다음이며 자신은 세 번째라고 했다.

설명에 따르면 큰 형은 사람들이 병의 증상을 느끼기도 전에 얼굴 빛만 보고 장차 병에 걸릴 것을 알아내 미리 병의 원인을 제거해 줌으로써 사람들은 아파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치료를 받았다는 생각조차 못한다는 것이고, 둘째 형은 사람들의 병세가 미미할 때 병을 알아채고 치료해주어 병을 낫게 해 주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을 뿐이며, 자신은 병세가 깊어 고통을 느낄 때 비로소 병을 알아보고 치료를 해주기 때문에 명의로서 소문이 났을 뿐 사실은 자신의 큰형이 가장 명의라고 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부패척결을 위한 여러 사정기관이 있음에도 부패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고, 각 사정기관마다 하는 일이 서로 중첩되거나 옥상 옥 현상으로 난립되어 서로 실적경쟁에만 열을 올릴 뿐 유기적 협력관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국가기능의 효율적 운용이 제대로 안되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편작의 큰형에 해당하는 기관은 누가 뭐라 해도 새로 탄생한 부패방지위원회일 것이다. 병들지 않게 미리 체력을 보강시키고 예방책을 세우는 일이야말로 부정부패가 판을 치지 못하도록 부패원인에 대하여 미리 조사평가를 하고 제도를 개선 정책에 반영하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다만 신고심사국에서는 부패행위에 대한 신고를 받아 신고인을 중심으로 이를 뒷밭침할 자료를 수집 조사한 후 심사, 위원회가 의결하여 각 사정기관에 이첩하는 일을 주 임무로 하고 있다.

이는 편작이 하는 일과 유사하지만 다만 법률로서 내부공익신고자를 보호하고, 보상하는데 특별한 규정을 둠으로써 신고를 유도하는 나름대로의 독자적 기능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편작에 해당하는 기관에서도 사실상 신고자를 보호하고 있어 편작도 할 수 있는 일이므로 역시 본연의 임무는 신고를 통한 갖가지 부정부패유형을 제공 받고, 문제점을 발굴 도출하는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제도개선과 정책개발에 기여 하는 기능이 주가 되어야 한다.

신고심사국이란 조직이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내부공익신고를 활성화 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한두 가지 커다란 단발사건으로 언론에 주목받는 것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아무리 작은 사건이라도 구조적이거나 고질적 비리를 척결할 수 있는 제도개선과 정책개발로 연결될 때 비로소 가치가 있는 소중한 사건이란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설령 부패방지위원회가 이첩하여 크게 사건화 되었더라도 이는 수사 또는 감사의 단서를 제공함에 불과할 뿐 그 공은 수사나 감사를 담당하였던 기관의 공으로 돌아가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공을 탐하거나 인기영합을 위하여 피신고인에 대한 직접 조사권내지 수사권 확보를 바란다면 검찰의 수사지휘를 받아야 되며, 이는 마치 편작의 큰 형이 장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편작과 같이 환자 하나하나를 상대로 피고름을 짜면서 수술 칼까지 들이대겠다는 것으로 결코 쉽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위험천만한 일이다.

내부공익신고자의 신고는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기 때문에 증거수집에 어려움이나 커다란 문제점이 발생할 여지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부패방지법 입법과정에서 조사권을 명시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내부공익신고를 활성화하는 길만이 부패방지위원회가 살아남는 길임을 명심하고 이를 위해서는 신고자 보호보상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하는 것으로서 신고자를 보호할 수 없다면 차라리 사건을 하지 않는 것이 조직을 살리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다음으로 편작의 둘째형에 해당하는 기관으로서는 감사원이나 경찰이라고 생각된다. 감사원이 비리의혹이 있거나 부당행위가 있을 때 이를 감사하거나 직무감찰을 통하여 적발, 시정함으로써 공직기강을 바로 잡는 기능, 경찰의 방범순찰, 교통단속과 같이 범죄예방 및 사고방지활동 등 사회를 보호하는 기능이 본연의 업무라고 볼 때 이는 병세가 미미할 때 병을 알아채고 치료해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편작에 해당하는 기관은 검찰청이라고 본다. 검찰은 범죄가 이미 발생하였을 때 비로소 수사를 하고 적정한 양형을 구형하는 등 범죄수사와 소추가 본연의 임무로 편작이 환자가 병이 깊어 고통을 호소할 때 진맥하고 수술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도 수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나 앞서 말한바와 같이 수사 활동이 본연의 주 임무라고 보기는 어렵다.

편작의 3형제가 모두 의사이지만 각자 맡은 역할로 서로 합심 협력하여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건강생활을 영위하게 하듯이 부패를 척결해 깨끗하고 건전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부패방지위원회가 주어진 고유임무를 음지에서 묵묵히 처리함으로써 부패를 근원적으로 뿌리 뽑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특히 공직부패에 대하여는 장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여 앞서 언급한 각 사정기관들을 이끌어 갈 때 비로소 조직의 존재가치가 빛나게 되고 부패도 수그러지리라 본다.

 

“나는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

의료인이라면 고된 수련 과정을 마치며 설레는 마음으로 되뇌였던 의료인의 윤리강령을 담은 <히포크라테스 선서> 중 한 부분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히포크라테스’는 서양에서 의학의 아버지라고 존경받고 있는데, ‘플라톤’에 의하면 전문적으로 의학도를 훈련시킨 인물이라고 한다.

서양에 히포크라테스가 있다면 중국에는 ‘편작’과 ‘화타’가 있다고 한다(우리나라에도 ‘구암 허준’ 등 많은 명의들이 계시지만 칼럼의 특성 상 십팔사략 속 인물을 다루는 관계로 중국의 명의를 소개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편작과 화타는 중국에서 의성으로 일컬어지는 인물들이다. 전국시대의 편작은 최초 한방 분야의 부인과와 소아과 의사로, 후한 말기의 화타는 뛰어난 외과의사로 평가받고 있다. 오늘은 이 두 인물 중 ‘편작’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편작은 격동의 전국시대를 살다간 인물로 성은 ‘진’, 이름은 ‘완’, 자는 ‘월인’, 호는 ‘노의’이다. 그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제나라로 지금의 중국 허베이 창주, 또 하나는 노나라로 지금의 제남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제나라 중국 허베이 창주 출신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이 편작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재미난 이야기가 존재한다. 편작은 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춘추전국시대 동쪽 지역의 뛰어난 의원이나 환자를 치료하던 의원들을 통틀어 편작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편작(扁鵲)이라는 이름의 뜻이 ‘까치가 난다’는 것처럼 병을 치료하는 의원은 환자들에게 반가운 존재이기에 그리 불렀다고 추측하는 의견들도 있다. 당시 의원들은 지금처럼 한 장소에 머물며 의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떠돌며 환자들을 치료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편작’이라는 인물 또한 대륙을 떠돌며 조나라에서 편작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혹은 아주 오래 전 ‘편작’이란 명의가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 제나라 진월인의 신출귀몰한 의술로 인해 예전의 편작이 다시 태어났다는 의미로 진월인을 편작이라고 불렀다는 의견도 있다.

어찌되었든 오늘 소개하는 ‘편작’은 제나라 출신의 의원으로 사서에 기록된 인물이다. 편작은 히포크라테스처럼 의료업에 종사한 가문에서 태어난 이가 아니다. 원래 객사에서 관리인으로 일했는데, 그 객사에 오래 투숙한 ‘장상군’이라는 이의 눈에 들어 놀라운 비방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장상군은 편작의 인간됨을 기특하게 보았던지, 편작을 불러 이슬에 섞어 마시면 30일 뒤에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투시력을 갖게 된다는 약과 함께 그가 가진 비방이 적힌 책을 건네주고 사라졌다. 장상군의 말대로 약을 복용하고 편작은 담 너머에 있는 것도 볼 수 있을 정도의 투시 능력을 갖게 되었으며 뛰어난 진맥 실력과 함께 의원으로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런 이야기는 아마 편작이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도 병을 알아내는 능력에 감탄한 이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편작은 남다른 뛰어난 관찰력이 있었다는 증거일 것이고 이는 의원으로서 그의 능력을 배가시키는 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제자들을 데리고 제나라와 조나라 등을 돌아다니며 편작은 놀라운 의술을 펼친다. 괵나라에서 죽은 태자를 다시 살려낸 이야기가 유명한데, 죽은 태자를 가만히 지켜보던 그는 태자가 아직 죽지 않은 것이니 살릴 수 있다고 말하며 침과 약으로 다시 살려내었다고 한다. 이 일로 편작은 ‘죽은 사람도 살리는 명의’로 화려한 프로필을 얻게 된다. 괵나라 태자 뿐 아니라 제나라 환후의 병을 예견하고 경고한 일화도 유명하다. 환후를 보고 병에 걸린 것이 분명하니 조기 치료를 권했으나 왕은 그를 조롱하며 자신의 건강을 과시했다. 며칠 후 환후를 만난 편작은 병이 혈맥을 범했으니 치료하라고 경고했으나 역시 왕은 무시했다. 시간이 흘러 왕을 다시 만난 편작은 병이 장기를 침범했으니 빠른 치료를 권했으나 환후는 도리어 화를 내고 만다. 또 다시 며칠 뒤, 편작은 왕을 문안했으나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물러나온다. 이를 이상하게 본 환후가 편작에게 치료를 청했지만, 그는 이미 골수까지 침범하여 손을 쓸 수 없다고 하며 치료를 거부한다. 편작의 말대로 결국 국왕은 병으로 쓰러졌고 그를 급히 찾았으나 편작이 제나라를 떠난 뒤였다. 병이 깊어진 환후는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고 죽고 말았다고 한다.

하늘이 내린 명의로 추앙받았으나 편작 진월인은 늘 겸손했다. 그 겸양의 미덕은 왕과의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편작 위로 형이 둘 있었는데 이들도 의원이었다. 왕이 삼형제 중 누가 가장 의술이 뛰어난지 물어보자 그는 자신의 의술이 가장 미천하며 형들의 의술을 격찬했다고 한다. 온 세상이 인정하는 실력을 두고 자만하지 않고, 오롯이 낮은 자세에서 환자들을 대하는 그 모습을 보며 돈만 쫓는 현대의 일부 의료인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사랑을 받으면 시기와 질투 또한 따라오는 법이다. 완벽한 그의 의술을 천하 만민이 추앙했으나, 주술에 의한 치료를 반대한 편작을 당대 무술인들과 실력 없는 의원들이 싫어했다고 한다. 그의 명성이 높아지자 자신의 지위를 위협받을까 저어한 진나라의 ‘이혜’라는 시종의가 자객을 보내어 편작을 살해하고야 말았다. 세상을 위해 모든 것은 던져 많은 생명을 구한 위대한 인물의 어이없는 죽음이다. 초라한 죽음이었지만 그가 세상에 뿌린 씨앗이 싹을 틔우길 시작한다. 그의 의술은 훗날 중국 의학의 본격적인 출발이 되었고, 후세 사람들에 의해 <난경>이라는 책으로 만들어진다.

편작은 신출귀몰한 놀라운 의술로 많은 생명을 구했으므로 현재까지도 신이 내린 명의로 존경받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그 뛰어난 의술이 편작을 우러러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의료행위에 담긴 인간을 귀히 여기고 아끼는 고귀한 정신이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나도 우리에게 크나큰 감동을 안겨준다고 본다. 인간을 위한 의술이 시작한 그 태초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이기적인 의료인들로 인해 분노와 슬픔을 느끼게 하는 의료사고가 빈번한 요즘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뿐만 아니라 물질만능주의에 눈이 멀어가는 우리 모두 한번 쯤 인간을 사랑하고 아꼈던 편작의 위대한 정신을 배우려고 노력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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