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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자료

자(自_코의 문명과 철학)

by 안녹산2023 2023.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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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자

 

 

 

기계는 자동화로 사람은 자율화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산업 사회의 특성이다. 영어로는 그것을 '오토'와 '셀프'의 두 접두어로 나타내고 있지만 한자권에 속해 있는 우리는 자(自) 자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 사무 자동화에 자율 식당이다. 

 

자(自) 자에는 '자기, 스스로, 저절로'와 같은 뜻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기묘한 것은 바로 그 자(自) 자가 원래는 사람의 코를 뜻한 글자였다는 사실이다. 보기에는 눈 목(目) 자처럼 생겼지만 실은 정면에서 본 코 모양을 나타낸 글자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것은 지금 코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비(鼻)의 옛 글자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가뜩이나 복잡한 비(鼻) 자의 머리에 자(自) 자가 붙어 있는 그 이유가 조금은 손에 잡히는 듯도 하다. 

 

문제는 왜 코가 자기를 뜻하는 글자로 변했느냐는 점이다. 사람의 얼굴에는 코만이 아니라 눈도 있고 귀도 있다. 더구나 식구니 인구니 하는 말에서처럼 사람의 전통성을 나타내는 것은 코가 아니라 입(口)이다. 인간의 수를 입으로 나타낸 것은 맹자 때부터 있었던 용법이다. 한비자는 한 호(戶)의 인구를 평균 5인으로 잡았었는데 맹자는 그것을 오구지가(五口之家)라고 했다.

 

그리고 요즈음 한창 유행하는 AV라는 말은 오디오와 비주얼의 시청각을 나타낸 말로서, 오늘의 문명을 나타내는 인체 부위는 눈과 귀이지 코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서양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뜻할 때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을 대표하는 것은 역시 코였던 것 같다. 모든 것의 시작은 비조(鼻祖)라고 하고 왕 중 왕을 황제(皇帝)라고 한다. 비조의 비 자는 코의 뜻이고 황제의 황 자는 코를 뜻한 자(自) 자 밑에 왕 자를 붙인 글자이다. 왕의 코가 바로 왕보다 높은 황인 것이다.(오늘날의 황(皇) 자는 백(白) 자 밑에 왕(王) 자를 쓴 것이지만 고자(古字)는 자(自) 자 밑에 왕을 쓴 것으로, 황 자는 인류 개조의 위대한 사람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포유동물이 태어날 때에는 제일 먼저 코가 나온다고 하여 처음이라는 뜻이 되었고 동시에 생명의 원천이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서양 사람과는 달리 한자 문화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뜻할 때는 예외 없이 자기 코를 가리킨다. 그래서 원래의 코를 가리키던 자(自) 자가 오늘의 자(自) 자처럼 자기를 뜻하는 글자가 된 것이라고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귀와 입 그리고 코의 전통성 시비를 가지고 역사 논쟁을 벌이려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서양사에서는 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의 코와 파스칼의 명언이, 그리고 동양사의 경우에는 임진왜란 때 수급 대신 한국인의 코를 베어간 왜군들의 만행이 거론될지 모른다. 눈도 귀도 두 개이지만 코만은 하나다. 그리고 얼굴의 한복판에 있다. 눈을 감아도 입을 벌려도 그 얼굴은 별로 달라지지 않지만 코는 약가만 들어 올려도 다른 사람이 된다. 

 

많은 논쟁이 있을 수가 있다. 정말 자기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얼굴 부위는 무엇인가. 생각하기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이론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속에 진짜 '나'가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숨을 쉰다. 잠을 잘 때에도 눈과 귀는 감기고 닫히지만 코만은 멈추지 않고 숨을 쉰다. 늘 깨어 있는 것이 바로 코이다. 숨통을 막으면 자기는 없어진다. 이 자율성과 지속성 그리고 억지로 꾸민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저절로 배어나는 자생력, 이것이 나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성격이나 자존심을 나타내는 말에는 으레 코가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콧대가 세다느니 코가 납작해졌느니 하는 말이 모두 그런 것이다. 

 

자(自) 자에서 코와 숨결의 의미가 사라진 것 - 여기에도 현대 문명의 한 비극이 있다. 자동이라는 말이 로봇과 같은 기계에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自)라고 하면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타율화한 움직임이 연상된다. 로봇이라는 말이 체코 말로 노예라는 말이라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자율 식당', '자율 학습'의 자 자처럼 오히려 자 자가 붙어 있는 것은 저급하고 대단치 않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자연이란 말은 동양에서만이 아니라 희랍에 있어서도 스스로 생성되는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스스로 되는 것 - 그것이 자연의 위대한 힘이다. 그런데 현대의 문명인들은 그 자연을 기껏 사랑한다고 해도 '자연보호(自然保護)'란 말을 쓴다. 사람이 어른이고 자연이 어린아이처럼 보호받는 대상으로 전락된 것이다. 자연보호란 말에는 자연을 정복한다고 말하는 인간들보다도 더 오만한 의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사정은 거꾸로가 아닌가. 인간이 자연을 보호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이 인간을 보호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다. 부모를 공경한다고 하지 부모를 보호한다고는 하지 않는다. 자연은 생명을 낳아준 '그레이트마더[大母]'이므로 '자연보호'가 '자연 공경'이 될 때라야 인류는 공해에서 거듭 탄생할 수가 있다.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은 에이즈라는 균은 그동안 인간과 사이좋게 즉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고 살아왔던 존재이다. 그것이 어느날 갑자기 흰 이빨을 드러내고 인간에 치명타를 가한 것이다. 즉 더 이상 인간을 보호할 생각이 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인간을 방사선에서 보호해 주는 오존층이 그렇고 인간의 양식을 키워주는 대지가 그렇다. 이 하늘과 땅의 자연에 의해서 보호받아 온 사람들이 자연을 보호하자고 덤벼드는 것은 희극에 가깝다. 자연 감사 운동, 자연 존중 운동으로 자연보호 운동의 그 녹색 혁명은 말부터 고쳐야 한다.

 

아니다. 무엇보다도 자연이라는 말의 자(自) 자를 재음미해야 할 것이다. 서양이 오늘처럼 된 것은 희랍 사상의 '자연 존재'를 '본질 존재'와 '사실 존재'로 바꿔놓은 데 있다고 어느 철학자는 말한다. 스스로 숨쉬는 것, 스스로 생성되는 것, 그러한 자연 존재는 포드가 처음 썼다는 '자동식(Automation)'의 오토와는 다르다. 한자로 코를 의미했던 자(自)의 의미를 잘 생각하면 기계의 자동화 시대에서 바이오의 자동화 시대로 옮겨가려는 미래의 큰 문명의 변화가 좀더 명확하게 보일는지 모른다. 

 

자 자가 본래의 그 글자 뜻대로 숨 쉬는 코, 자긍심의 그 코로 돌아올 때 그래서 자기 정체성이 회복될 때 우리에게도 후기 산업화 시대의 새 세기가 열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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