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학

저주를 알면 야구가 재밌다_귀인이론

by 안녹산2023 2024. 1. 7.
반응형

 

 

염소의 저주

 

 

 

저주 vs 저주, 누가 이겼을까?

 

1945년 가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최종 우승 팀을 기리기 위해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시카고 컵스'가 월드시리즈에서 맞붙었다. 사건은 시카고 컵스 홈구장인 리글리 필드에서 4차전이 열리기 직전 발생했 다. 시카고 컵스 ‘광팬'이었던 윌리엄 시아니스 William Sianis라는 사람이 자신의 염소를 끌고 와서 리글리 필드에 입장하려고 한것이다.

 

“염소의 티켓을 따로 구매했으니 내 염소도 경기를 관람할 권리가 있소. 염소와 함께 입장하겠소."

 

그러나 구단주가 염소의 악취를 싫어한다는 이유로, 경기장 관리인은 염소의 입장을 강력히 저지했다. 

 

“염소에게서 악취가 납니다. 다른 관중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으니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염소와 동반 입장을 고집하던 시아니스는 경기장 입장이 끝내 좌절되자 크게 분노했다. 

 

“시카고 컵스는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패배할 것이며,두 번 다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 일도 없을것이다."

 

공교롭게도 그날 벌어진 월드시리즈 4차전에서는 시카고 컵스가 패하는 바람에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고, 결국 3승4패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우승 트로피를 내주고 말았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시카고 컵스는 1945년 이후 월드 시리즈 무대를 한 번도 밟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으로 우승한 1908년 이후 100년이 넘도록 우승하지 못했다. 시아니스가 내뱉은 악담이 저주로 돌아온, 이른바 ‘염소의 저주(Curse of the Billy Goat)'가 시작된 것이다.

 

시카고 컵스에 염소의 저주가 있다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구단에는 ‘와후 추장의 저주'가 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원래 1901년 ‘클리블랜드 블루버즈'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다. 그러다 구단은 아메리칸 인디언 출신 루이스 소칼렉시스(Louis Sockalexis)라는 선수를 기리는 의미로 블루버즈 대신 인디언스로 팀명을 바꾸기로 하고, 인디언 모습의 캐릭터 ‘와후'를 로고로 사용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강팀 으로 군림하며 1920년, 1948년 월드시리즈에서 두 번 우승했다. 하지만 이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경기력은 떨어졌고 우승은커녕 하위권 팀으로 낙인찍히는 처지가 되었다.이렇게 월드시리즈 진출이 요원하자, 팬들 사이에서 뜻밖의 괴담이 퍼지기 시작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하는 이유는 와우 추장의 저주 때문이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1928년부터 와후 추장을 로고로 사용하다가, 팬들에게 친근감을 준다며 1946년부터 코믹스러운 추장 모습으로 로고 디자인에 변화를 주었다. 그런데 와후 추장의 과장된 표정이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아메리칸 인디언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했다는 비난과 함께, 빨간 피부색에 그들을 비하하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이유로 클리블랜드 팬들은 로고 때문에 인디언 원혼의 저주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구단은 괴소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내실을 다지기 시작했다. 구장을 신축하고 새로운 감독을 선임했으며 젊은 선수들을 영입 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1997년에 강호 ‘뉴욕 양키스'와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연파하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기운은 거기까지였다. 월드시리즈를 7차전까지 끌고 가며 9회까찌 2대1로 앞서갔으나 동점을 허용했고, 결국 11회 연장전 끝에 역전당해 우승을 놓쳤다.

 

이에 저주를 풀려면 팀의 로고를 비꿔야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구단은 2011년에 홈 유니폼을 제외한 원정 유니폼에 와후 추장의 로고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이 문제는 정치권에서까지 언급될 정도로 민감한 사안이 되었다. 하지만 구단은 그가 팀의 역사와 함께하는 상징물이라며, 하루 아침에 바꿀수 없는소중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와후 추장의 로고를 버리면 인종차별적인 로고를 의도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셈이기에 더욱 그랬다. 로고를 둘러싼 첨예한 논쟁이 한동안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다. (2018년 클리블랜드 구단이 2019년 시즌부터 와후 추장 로고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와후 추장의 로고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2016년 월드시리즈에서 저주와 저주가 만났다. 염소의 저주를 받은 시카고 컵스와, 와후 추장의 저주를 받은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7차전 막판까지 혈전을 벌였다. 마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하듯 말이다. 야구팬들은 저주와 저주의 싸움에 큰 흥미를 느꼈다. 이 시리즈가 끝나면 두 팀 가운데 한 팀은 오랜 저주에서 무조건 풀려나기 때문이다. 누가 먼저 저주에서 벗어날 것인가. 팬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시카고 컵스가 월드시리즈를 제패하며 무려 108년간 이어진 지긋지긋한 염소의 저주에서 벗어났다.

 

이 밖에도 메이저리그의 저주는 다양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야구를 볼 수 있는 월드시리즈는 그 자체로 매우 재미있지만, 저주에 얽힌 이야기가 더욱 흥미를 유발한다.

 

내 실수는 네 탓이오, 네 실수도 네 탓이다.

 

 

염소의 저주 드디어 풀다

 

 

 

 

월드시리즈에 걸린 다양한 저주는 왜 생겨났을까? 우리는 평소 실패하면 그 원인을 찾아내려고 한다. 오늘 저녁 모처럼 큰 맘 먹고 요리를 시작했다고 하자. 조리법대로 요리했는데도 원하는 맛이 나오지 않았을 때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까? ‘양념 비율을 잘못 맞추었나?', ‘내가 요리에 제주가 없나?' 등 별별 생각을 다 한다. 혹은 ‘조리법이 잘못됐네.', ‘식자재가 안 좋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뿐인가. 맘에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고백했다가 퇴짜를 맞았을 때도 이유를 추측하느라 잠을 설친다. 열심히 준비한 시험을 망치고 나면 왜 점수가 이 모양인지 자책하며 원인을 파악한다.

 

이처럼 자신이 저지른 실수나 실패 또는 다른 사람의 행동에 반드시 원인이 있다고 믿고, 그 원인을 추론하는 과정을 ‘귀인(歸因, attribution)'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귀인은 행동의 원인을 규명하려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왜 귀인을 할까? 인간에게는 내가(혹은 타인이) 저지른 실수의 원인을 명확히함으로써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행동을 예측하고 싶어 하는, 보이지 않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귀인 이론(att‘ibution theory)을 체계화한 미국의 심리학자 버나드 와이너(Bernad Weiner)에 따르면 귀인에는 ‘상황적 귀인'과 ‘기질적 귀인'이 있다. 와이너는 이런 예를 든다. 어떤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을 때, 원인을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가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상황적 귀인, 살인범의 성격 자체가 원래 포악하고 흉악하다는 등 그 사람의 격이나 성질 탓으로 돌리는 것은 기질적 귀인이다. 간단히 말하면 인을 외부 상황에서 찾는 것은 ‘외부적 귀인(상황적 귀인)', 행위자 내부의 성질에서 찾는 것은 ‘내부적 귀인(기질적 귀인)'이다. 앞서 예로 든 요리의 경우, 요리가 실패한 이유를 ‘내가 양념 비율을 잘못 맞추었거나 요리 재주가 없다'고 판단했다면 내부적 귀인이다. 반면에 ‘조리법, 식자재, 조리 도구가 안 좋았다'는 판단은 외부적 귀인에 해당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자신에게는 외부적 귀인을 하지만,타인에게는 내부적 귀인을 하는 경향이 있다. 즉 내 실수는 '세상 탓, 상황 탓'이고, 다른 사람의 실수는 ‘그 사람 탓'이라는 논리다.

 

내가 학교에 지각하면 ‘차가 밀려서 어쩔 수 없이 늦었어.'라며 지각의 원인을 외부 상황으로 돌리지만, 다른  친구가 지각하면 ‘원래 게으른 애라서 지각했을 것'이라거나 ‘분명히 늦잠을 자다가 지각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각의 원인을 그 사람 내부의 문제로 돌린다. 다른 사람이 화내면 성질이 더럽다고 흉보지만, 내가 화내면

 

“내가오죽 하면 화를내겠냐”

 

며 화낸 이유를 외부에서 찾으려 한다. 이런 현상이 시쳇말로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우스갯소리를 만들어 낸 심리적 기제다.

 

외부적 귀인이 잘못된 이유

 

이런 개인적 귀인이 사회적으로 확대되면 문제가 적지 않다. 일례로 2011년 캐나다의 한 경찰관이

 

"성범죄를 당하지 않으려면 ‘헤픈 여자(slut)'처럼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고 발언한 직후에 미국, 영국, 한국 등 30여 개국에서 이 발언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야한 옷을 입고 거리를 걷는 ‘슬럿 워크(slut walk)'라는 시위 문화가 생겨난 일을 들 수 있다. 캐나다 경찰관은 성범죄 피해자를 두고 ‘옷을 야하게 입었으니까.', ‘평소 행실이 문란하니까.'라며 피해자의 성향에 문제가 있다고 내부적 귀인을 한 것이다. 과연 다른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두고도 이런 귀인이 가능할까? 즉 성범죄가 ‘나'에게 발생한 경우에도 내부적 귀인을 적용할 수 있을까?

 

다시 야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월드시리즈의 다양한 저주는 왜 탄생했을까?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한 구단과 팬들은 그 원인을 찾으려 귀인을 했을 테다. 그런데 저주를 안고 있던 구단들은 한결 같이 한때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고, 그만큼의 성적을 기대하는 팬이 많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성적이 부진한 원인을 구단 내부의 문제로 귀인을 하기에는 구단에 대한 팬들의 자부심이 너무 강한 것이다. ‘우리 구단내부에는 문제가 있을리 없다'는 자존심이 자꾸만 외부에서 원인을 찾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사건에 의한 저주가만들어지며 적절한 귀인을 찾게 되었다. 구단 내부의 탓보다는 외부의 탓을 찾아냄으로써 성적 부진의 핑곗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했다고나 할까? 더욱이 월드시리즈는 그런 저주를 경기 흥행을 위한 스토리텔링으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100년 넘게 지속된 월드시리즈의 유서 깊은 저주도 이제 하나둘 사라져 가는모습을 보면, 외부적 귀인은 확실히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우리 일상에서 발견하는 불합리한 외부적 귀인들 중에도 사라져야 할 것이 많다. 확실히 내 잘못의 원인은 남에게 있지 않고 내게 있을 때가 많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