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사

제2차 갑오개혁 두문자 : 23 7 교 사

by 안녹산2023 2023. 10. 19.
반응형

 

제2차 갑오개혁 : 23 7 교 사

23 : 전국을 23부로 개편

7부 : 8아문을 7부로 개편

교 : 육입국조서 발표

사 : 법권 독립

 

 

1. 전국을 23부로 개편

23부라 함은 1895년 6월 23일(음력 윤5월 1일)부터 1896년 8월 4일까지 실시된 조선 말기 지방 행정구역이다. 이 행역으로 개편한 뒤인 1896년 1월 1일(음력 1895년 11월 18일)에 표준 달력을 기존 태음태양력에서 태양력으로 바꿨기 때문에 개편날짜에 음력을 병기한다.

제2차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진행된 행정구역 개편으로, 조선 건국 이래 500여년간 지속되어 온 8도를 해체하고 전국을 8도보다 좀 더 세분화된 23부(府) 337군(郡)으로 분할하였다. 조선의 기존 행정구역은 도(道) 아래에 부·대도호부·목·도호부·군·현 등 다양한 등급의 행정구역이 혼재되어 혼란을 초래하고 있었다. 이를 부-군 체계로 이원화하여 행정의 효율을 높이고자 한 것이 개혁의 취지.

실제로 전통적인 8도 체제는 제정된 지 시일이 상당히 지난 탓에 도 간의 인구격차가 크고, 실제 생활권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여러 문제가 있었다. 조선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남부지방이 겨우 3개 도(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편성된 데 비해 인구밀도가 희박하면서 면적이 거대한 북부지방은 2개 도(평안도, 함경도)로 편성되었고, 생활권이 서로 다르던 영동 영서가 같이 강원도에 묶였는가 하면, 생활권이 비슷한 충주를 중심으로 한 남한강 수계 일대는 충청도와 강원도로 양분되었다. 원산 일대는 영동 방언을 쓰는 지역이었지만 강원도가 아닌 함경도에 소속돼 있었다.

23부제 개혁은 인구분포 및 생활권을 보다 실질적으로 반영하고, 지역편차가 큰 도를 더 작게 나누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도 아래의 하위 행정구역이었던 부·대도호부·목·도호부·군·현은 모두 군으로 일원화되었다. 또한 각 부의 명칭을 정할 때 그 부 소속이 최대도시(부 소재지)의 이름을 차용했다.

23부 각 부 수장은 관찰사(觀察使)였으며, 부차적으로 부장관(府長官)이라는 직함을 사용했지만 공식 직함은 관찰사였다. 군에 군수(郡守)를 두었다. 이때 집권층 성향대로 동시대 일본에서 단행한 폐번치현 도도부현(당시 청부현) 체제를 따라한 것 같다. 23개 부 면적도 일본 43개 현과 비슷하다. 일본도 전통적으로 한국처럼 오기칠도라고 해서 전국을 7개 도로 나누었고 교토와 오사카 등 간사이 지역은 '긴키'라고 해서 별도 행정구역으로 삼았던 것을, 메이지 유신 때 기존 오기칠도 체계 대신 에도시대의 번에 기반한 부와 현으로 개편하고 이름을 부, 현에 속한 군이나 최대도시(구, 정. 1899년 4월에 구를 시로 개칭)에서 차용했다.

 

 

2. 8아문을 7부로 개편

의정부의 명칭을 내각으로 고쳤다. 이후 내각 관제를 발표하여 내각의 업무를 강화시켰다. 기존의 8아문을 7부로 고쳤다. 7부는 각각 외부, 내부, 탁지부, 군부, 법, 학부, 농상공부이다. 

 

3. 육입국조서 발표

 

짐(朕)이 생각해 보면 우리 조종(祖宗)이 나라를 세우고 정통(正統)을 물려준 것이 이제 504년이 지났으니, 실로 우리 선왕들의 교화와 은덕이 사람들 마음속에 깊이 스며들고 또 우리 신하와 백성들이 충성과 사랑을 능히 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짐은 한없는 큰 대운(大運)를 물려받고 밤낮으로 공경하고 두려워하면서 오직 조종의 가르침을 이어 나갈 뿐이다. 너희들 신하와 백성은 짐의 마음을 깨달아라. 오직 너희들 신하와 백성의 선조는 우리 조종이 돌보고 키워 준 어진 신하와 백성이었으니, 너희들 신하와 백성들도 너희 선조의 충성과 사랑을 능히 이어서 짐의 돌봄과 키움을 받는 어진 신하와 백성들이다. 짐은 너희들 신하와 백성들과 함께 조종의 큰 기반을 지켜 억만 년의 아름다운 운수를 이어 나갈 것이다.

 

백성을 가르치지 않으면 나라를 굳건히 하기가 매우 어렵다. 세상 형편을 돌아보면 부유하고 강성하여 독립하여 웅시(雄視)하는 여러 나라는 모두 그 나라 백성의 지식이 개명(開明)했다. 지식이 개명함은 교육이 잘됨으로써 말미암은 것이니, 교육은 실로 나라를 보존하는 근본이다. 그러므로 짐이 임금과 스승의 자리에 있으면서 교육하는 책임을 스스로 떠맡고 있다. 교육에는 또한 그 방도가 있으니, 허명(虛名)과 실용(實用)의 분별을 먼저 세워야 할 것이다. 책을 읽고 글자를 익히어 고인(古人)의 찌꺼기만 주워 모으고 시대의 큰 형국에 어두운 자는 문장이 고금보다 뛰어나더라도 쓸모가 전혀 없는 서생(書生)이다.

 

이제 짐은 교육하는 강령을 제시하여 허명을 제거하고 실용을 높인다. 덕양(德養)은 오륜(五倫)의 행실을 닦아 풍속의 기강을 문란하게 하지 말며, 풍속과 교화를 세워 인간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의 행복을 증진시킬 것이다. 체양(體養)은 동작에는 일정함이 있어서 부지런함을 위주로 하고 안일을 탐내지 말며 고난을 피하지 말아 너의 근육을 튼튼히 하며 너의 뼈를 건장하게 하여 병이 없이 건장한 기쁨을 누릴 것이다. 지양(智養)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데서 지식을 지극히 하고 도리를 궁리하는 데서 본성을 다하여 좋아하고 싫어하며 옳고 그르며 길고 짧은 데 대하여 나와 너의 구별을 두지 말고 상세히 연구하고 널리 통달하여 한 개인의 사욕을 꾀하지 말며 대중의 이익을 도모하라. 이 세 가지가 교육하는 강령이다.

 

짐이 정부(政府)에 명하여 학교를 널리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너희들 신하와 백성의 학식으로 나라를 중흥(中興)시키는 큰 공로를 이룩하기 위해서이다. 너희들 신하와 백성은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심정으로 너의 덕성, 너의 체력, 너의 지혜를 기르라. 왕실의 안전도 너희들 신하와 백성의 교육에 달려 있고 나라의 부강도 너희들 신하와 백성의 교육에 달려 있다. 너희들 신하와 백성에 대한 교육이 훌륭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짐이 어찌 나의 정사가 성공했다고 하며 짐의 한국 정부가 어찌 감히 그 책임을 다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너희들 신하와 백성들도 교육하는 방도에 마음을 다하고 힘을 협조하여 아버지는 이것으로 그 아들을 이끌어 주고, 형은 이것으로 그 동생을 권하며, 벗은 이것으로 도와주는 도리를 실행하여 그치지 않고 분발해야 할 것이다. 나라의 한에 대적할 사람은 오직 너희들 신하와 백성이요, 나라의 모욕을 막을 사람도 너희들 신하와 백성이며, 나라의 정치 제도를 닦아 나갈 사람도 너희들 신하와 백성이다. 이것은 다 너희들 신하와 백성의 당연한 직분이지만 학식의 등급에 따라 그 효과의 크기가 결정된다. 이러한 일을 하는 데서 조그마한 결함이라도 있으면 너희들 신하와 백성도 오직 우리의 교육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상하가 마음 합치기에 힘쓰라. 너희들 신하와 백성의 마음은 또한 짐의 마음인 만큼 힘써야 할 것이다. 이러해야 짐은 조종의 덕을 드러내어 천하에 빛내고 너희들 신하와 백성도 너희 조상의 효성스러운 자손이 될 것이니, 힘써야 할 것이다. 너희들 신하와 백성이여, 짐의 이 말대로 하라.


『관보』, 개국 504년(1895) 2월 2일, 「조칙」

 

4.법권 독립

행정과 사법의 최초 분리 독립

 

반응형